융합이 빚어낸 작지만 큰 세계 - 서울대 전기공학부 학부장 전국진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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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김종립 기자ㆍjlkim00@donga.com |
SF영화를 보면 사람의 몸속으로 작은 기계가 들어가 병을 진단하고, 필요한 수술을 하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MEMS(미세전자기계시스템)는 이런 상상 속의 이야기를 현실로 만든다. MEMS 기술은 수 μm(마이크로미터, 1μm는 100만분의 1m)에서 수 mm 크기의 초소형 정밀기계 제작 기술을 말한다. 작고 정교한 기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부 ‘마이크로시스템 및 나노 기술 연구실’은 바로 이 MEMS를 연구하고 있다. 현대 생활을 뒷받침하는 MEMS “MEMS는 매우 작은 기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스마트폰에도 MEMS가 들어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관성센서, 가속도센서, 자이로센서입니다. 그 덕분에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네비게이션도 이용할 수 있죠.” 연구실을 이끄는 서울대 전기공학부 학부장 전국진 교수는 국내 MEMS 연구의 1세대다. 연구를 처음 시작할 때는 MEMS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이를 알리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다. 지금은 자동차, 전자기기, 바이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다. “MEMS가 처음 만들어진 1970년대엔 자동차용 관성센서, 타이어 압력센서 등 여러 센서를 작게 만들었습니다. 1990년대에는 잉크젯 프린터에서 잉크를 분사해 인쇄하는 헤드 부분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뒀죠. 최근에는 인체에 사용할 수 있는 바이오 MEMS 연구가 활발합니다. 이제 정보통신, 자동차, 항공, 군사, 의료, 생명공학 등의 다양한 산업제품과 융합해 원래 있던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전혀 새로운 제품도 만들고 있습니다.” MEMS 기술은 초정밀 미세 가공으로 기계의 소형화, 고성능화, 다기능화, 집적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단순히 기계를 작게 만드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작은 크기 안에 회로, 센서 기계장치를 모두 갖추려면 만드는 방식과 함께 구조와 재료도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MEMS는 반도체의 사촌쯤 됩니다. 반도체 제작 기술을 이용하는데, 반도체 실리콘 기판 위에 각종 기계를 제작합니다. 하지만 2차원 평면으로 만드는 반도체와 달리 MEMS는 3차원 공간에서 만듭니다.” 휴대전화에서 자가진단시스템까지 연구실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MEMS 연구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주제가 차세대 와이맥스 통신 안테나에 들어가는 무선주파수 스위치다. “이 무선주파수 스위치는 차세대 와이맥스와 휴대전화의 통신 안테나에 들어갑니다. 휴대전화가 작아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원하는 무선통신 주파수 신호를 연결하거나 끊을 수 있는 장치입니다. 스위치에 사용되는 회로 하나의 굵기가 50μm에 불과할 정도로 아주 얇습니다.” 최근에 각광받는 바이오 MEMS 연구도 주력 분야다. “휴대용 자가 건강진단시스템을 만들고 있습니다. 소량의 피로 면역 검사를 할 수 있죠. 마이크로유체시스템, 센서, 생체물질을 집적해 굳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병에 걸렸는지 진단할 수 있는 휴대용 장비입니다.” 전 교수는 몸속에 들어가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마이크로로봇도 먼 얘기만은 아니라고 했다. 단, 몸속에서 오래 활동하려면 로봇을 움직이는 전력이 필요하다. “쥐의 심장세포를 배양해 심장세포의 자발적 수축력을 에너지로 하는 마이크로구동기를 만들었습니다. 이 기계로 심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심장박동 소리를 탐지해 기능 이상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현재 사용하는 심박조율기는 전지를 교체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수술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MEMS 기술을 이용해 심박조율기를 만들면 전지 교체 없이 영구히 사용할 수 있어요. 머지않아 실용화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이와 함께 MEMS를 감싸는 패키징 방법도 개발 중이다. MEMS 기술로 만든 센서는 작은 크기의 구조에 많은 기능이 모여 있다 보니,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다. 따라서 필요없는 자극을 차단하고 내부는 보호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인체에 닿을 때 해가 가지 않는 방법도 고안하고 있다. 타 분야도 익히는 적극적 연구자세 필요해 MEMS는 다른 분야의 필요와 맞아떨어져야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잉크젯 프린터는 잉크를 분사하는 작은 구멍을 만들기 위해 MEMS 기술로 프린터 헤드를 만들었다. 따라서 MEMS 연구는 원하는 분야의 필요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전기전자, 기계, 재료, 물리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두루 갖춰야 한다. 전 교수는 특히 적극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연구원들에게 평소에 적극적인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려움에 닥쳤을 때 해결하려는 열성이 있어야 하죠. MEMS를 만들 때 비슷한 기능을 가진 자연이나 기계를 축소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기능은 유지하면서 크기를 줄이려면 형태가 많이 달라집니다. 형태가 달라지면 재질도 달라지죠. 이 모든 것을 혼자 다 할 수는 없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지식과 사람을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최근 많은 분야에서 융합과 협업이 강조되지만 MEMS에서는 특히 더 강조된다. 연구실이 속한 서울대 전기공학부는 MEMS 개발을 위해 현직 안과 전문의를 교수로 초빙한 바 있다. 또 융합과 협업의 과정에서 자연스레 리더십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리더는 단순히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소명을 가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선 책임감을 갖고 연구해야 하죠. 우리 연구실에서는 박사 3, 4년차에 들어서면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책임집니다. 후배를 이끌고, 연구에 필요한 기업을 찾고 협력해야 하죠. 이 과정에서 프로젝트를 능동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리더십을 기릅니다.” 전 교수는 융합연구를 하고 싶다면 MEMS 연구에 뛰어들 것을 권유했다. “MEMS를 연구한다면 리더십을 기르고 여러 학문을 넘나들며 새로운 기계와 전자장비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MEMS 연구는 적어도 두 가지 분야를 함께 알아야 합니다. 저는 학부에서 기계를 전공했지만 대학원에 들어와 전기공학을 공부했어요. 다른 분야도 두루 공부했습니다. 어렵지만 새로운 것을 계속 찾아 배우고 융합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과 일하면서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난 2월에 서울대 마이크로시스템 및 나노기술 연구실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강성찬 박사는 배우는 입장에서도 융합과 협력의 경험이 MEMS 연구의 큰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생소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협업을 하기 위해 만난 두 분야에서 서로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고, 연구 환경을 이해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그 과정에서 새로운 연구의 기회가 생깁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