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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알아채는 빛 반도체 - 윤의준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분야 정보기술.컴퓨터통신/반도체
산업기술/재료
날짜 2011-04-05
내 마음 알아채는 빛 반도체
윤의준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
| 글 | 이정아ㆍzzunga@donga.com |


“미래에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일명 스마트조명이 대세가 될 겁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머리 옆에 대면 심박이나 체온을 재거나 뇌파를 읽은 뒤, 조명에 정보를 보내는 거죠. 결국 조명은 사람의 기분에 따라 빛의 색깔과 조도를 바꿀 겁니다. 우울할 땐 밝고 따뜻한 색을, 화가 났을 때는 차분한 빛을 내겠죠. 스마트조명이 탄생하려면, 먼저 백열전구와 형광등 자리를 친환경 조명으로 메워야 합니다.”

윤의준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50)가 이끄는 ‘화합물반도체 에피성장 연구실’에서는 오랫동안 밝게 빛나고도 환경오염 물질을 내지 않는 차세대 전구의 소재를 연구하고 있다. 발광 다이오드(LED)다. 그가 보여준 LED전구는 일반 백열전구와 비슷하게 생겼다. 백열전구를 끼울 수 있는 자리에 LED전구를 끼울 수 있는 셈이다.

세계 곳곳에서 백열전구가 퇴출되고 있는 지금, 한국에서도 2013년부터는 백열전구 생산이 중단될 예정이다. 수명이 짧고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단점 때문이다. 형광등은 아직까지 퇴출 위기에 놓이지 않았지만 마찬가지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질인 수은이 들었기 때문이다. 수은과 형광물질이 방전할 때 생기는 자외선이 인체에 유해한 점도 문제다.

“LED전구는 형광등만큼 밝고, 수명은 4만 시간이나 지속돼 발광효율이 높습니다. 환경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기 때문에 차세대 조명으로 각광받고 있죠.” LED전구의 주재료가 바로 윤 교수가 연구하는 화합물반도체다.

연구실 이름인 화합물반도체 에피성장이란 두 종류 이상의 원소화합물을 차곡차곡 쌓아 결정을 형성해 반도체를 만드는 것을 뜻한다. 어떤 원소들을 결합했는지에 따라 반도체의 성질이 달라져, 실리콘으로 만들 수 없는 소자를 개발할 수 있다.



가스 불어 넣어 층층이 원소 쌓아

화합물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원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윤 교수는 주로 갈륨(Ga)과 비소(As) 또는 갈륨(Ga)과 질소(N)를 이용한다. 갈륨과 비소를 결합한 화합물반도체는 속도가 굉장히 빠른 컴퓨터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 다양한 색을 내는 LED는 갈륨과 질소를 결합한 반도체를 사용한다.

반도체를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사파이어 기판 위에 원소들을 쌓아 결정을 만든다. 원소는 크기가 아주 미세하기 때문에 가스 형태로 쌓는다. 갈륨(Ga)을 쌓으려면 (CH3)3Ga 가스를, 질소(N)를 쌓으려면 암모니아(NH)를 불어 넣는다. 갈륨 한 층, 그 위에 질소 한 층, 그 위에 다시 갈륨 한 층을 반복하는 방법으로 원소를 종류별로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층당 두께가 나노미터(nm, 1nm=10-9m) 단위밖에 되지 않아 굉장히 얇다.

원소들을 층층이 쌓은 결정을 약 1000℃에서 가열하면 질화갈륨(GaN)이 생성되면서 메탄가스는 밖으로 날아간다(MOCVD 공정). 여기에 배터리를 연결해 전기를 통해주면 된다. 실리콘만 겹겹이 쌓아도 만들 수 있는 반도체를 굳이 여러 원소를 겹겹이 쌓는 방식으로 개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합물반도체는 실리콘 반도체보다 속도가 빠르고, 실리콘 반도체로 할 수 없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윤 교수는 “화합물반도체는 빛을 내뿜거나 흡수할 수 있다”며 “빛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화합물반도체는 이미 주변에 널리 쓰이고 있는데, 가장 친근한 것이 광통신 케이블이다. 광통신 케이블은 전기에너지를 빛에너지로 바꿔주는 반도체(레이저 다이오드)를 사용한다. 이 반도체는 파장이 1.3~1.55m인 레이저를 발산한다. 레이저는 유리로 된 광섬유를 절대 빠져나가지 않고 양 벽에 부딪혀 광섬유를 통과한다. 전기 통신과 달리 외부 전자파의 방해를 받지 않고, 동시에 많은 양의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는 비결이다.

반도체마다 고유한 파장을 내는 빛이 나오기 때문에 원소들을 결합할 때 비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빛의 파장을 조절할 수 있다. 그래서 화합물반도체로 만든 LED로는 빨강, 초록, 파랑의 삼원색 외에도 수많은 색깔의 가시광선과 적외선, 자외선 같은 다양한 파장의 빛을 연출할 수 있다.

한편 윤 교수는 에피성장 기술과 나노기술을 융합해 LED전구의 효율을 높이는 질화갈륨 에피성장 원천기술을 개발해 국내외 특허를 출원했다. 이 기술로 사파이어 기판에 원소를 층층이 쌓을 때 기판 모양이 변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LED칩의 효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아직까지 매우 비싼 LED전구의 가격을 낮출 전망이다.



지구 살리는 연구

윤의준 교수의 연구실에서는 화합물반도체를 이용해 LED 외에도 태양전지, 적외선 센서와 야시경 등을 개발하기도 한다. 전기로 원하는 파장의 빛을 만들 수 있고 역으로 빛에서 전기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화합물반도체는 빛을 마음대로 만들거나 다룰 수 있는 마법사인 셈이다.

“공학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려면 지식을 많이 외우는 일보다 예상치 못한 현상을 봤을 때 문제점을 알아내고 원인과 대책을 알아낼 수 있는 적극성이 필요합니다.”

윤 교수는 학생들에게 절대 답을 ‘내어주지’ 않는다.그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식은 은사인 래퍼엘 라이프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영향이 컸다. 80년대 중순, 윤 교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방문했다가 우연히 보게 된 화합물반도체에 매력을 느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만난 라이프 교수는 ‘힘들게 공부시키는 스승’이었다. 어떤 현상에 대해 문제를 주지도 않았고 답을 주지도 않았다.

윤 교수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정답을 도출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으며, 정답을 내야 했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혼자 터득한 셈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했다. 박사 과정 초반에는 연구 성과도 적었다. 성공한 결과보다는 시행착오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교수가 되고나서야 라이프 교수의 교육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도 답을 알려주기 보다는 스스로 문제점을 찾고 해결하도록 유도한다.

“저희 연구실에서는 연구자로서 책임감이 강하고 연구를 하고자 하는 의지와 성실함을 모두 갖춘 학생을 선호합니다. 스스로 답을 도출하는 과정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하고, 시행착오를 여러 차례 겪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연구실을 졸업한 학생들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윤 교수는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곳에서 실리콘 메모리나 화합물반도체를 개발하는 졸업생이 가장 많다”면서도 “연구실에서 화합물반도체의 다양한 광학적 특성을 연구하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꿈을 펼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수의 비법전수

공학 분야에서 전문가란 많은 지식을 암기한 사람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 문제를 제기하고, 어떻게 원인과 대책을 알아낼 수 있을지 실험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연구에 대한 열정뿐 아니라 오랜 시간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견딜 수 있는 책임감과 성실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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