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쿼터스 항법 - 나는 지구의 어디쯤 있을까
글 : 박찬국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 chanpark@snu.ac.kr )
사례1
적의 레이더 기지를 겨냥한 미사일이 방해 전파에도 불구하고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하고, 며칠간 먼 바다에서 작전을 펼친 잠수함이 망망대해에서 아군의 함대와 정확히 합류한다.
사례 2
기말고사를 마친 한유비 군은 친구들과 무작정 배낭여행을 떠났다. 목적지에 대한 주변 정보가 없어도 휴대전화에 목적지만 입력하면 여행 경로와 주위의 맛집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편 말없이 여행을 떠난 한 군이 걱정된 부모님은 위치찾기 서비스를 이용해 아들이 어디에 있는지 추적했다.
사례 3
대형 백화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통로가 화염에 휩싸이고 유독가스와 연기가 자욱하게 퍼져 출구를 찾기 어려운 상황. 하지만 휴대전화의 응급구조 버튼을 누르자 즉시 소방관이 위치를 파악하고 나타나 구조에 성공한다.
모두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위치나 이동 방향을 정확히 알려주는 유비쿼터스 항법이 사용된 사례다. 항법이란 공간을 움직이는 물체의 위치와 속도를 찾는 방법으로 옛날부터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꼭 필요한 기술이었다. 바다에서의 항법이 2차원의 개념이라면 우주시대가 열린 지금의 항법은 3차원의 개념으로 발전했다. 우주 비행체뿐만 아니라 항공기, 잠수함, 유도미사일, 자동차, 사람에 이르기까지 항법은 다양한 분야에 꼭 필요한 기술이 됐다.
통합항법시스템이 중요하다
위치를 찾기 위한 항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현재 위치로부터 속도와 방향을 계산해 다음 위치를 찾는 추측항법이다. 사례 1의 군용 미사일은 신호교란이나 감지를 피하며 시간이나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일반 항공기도 마찬가지다. 이를 위해 관성항법장치가 사용된다. 관성항법장치는 추측항법의 발전된 형태로 속도계 대신 관성원리를 이용해 자신의 속도와 위치를 찾는다.
최근에는 초소형전자기계시스템(MEMS, Micro-machined Electro Mechanical System) 센서가 개발돼 초소형, 초저가의 항법장치의 가능성을 열었고, 원자 간섭방식을 사용한, 시간당 20m 범위의 오차를 가진 초정밀 항법장치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다른 항법은 고정위치항법이다. 옛날에는 북극성처럼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고정된 별을 보고 자신의 위치를 찾았지만 지금은 위성을 이용한다.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는 약 2만km 상공의 위성에서 보내는 신호를 바탕으로 위치를 찾는다. 수신기만 있으면 세계 어디서든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 또 GPS는 사례 2처럼 길을 안내하고 위치기반 서비스를 이용해 주변의 맛집이나 교통편 같은 정보를 제공한다. 실종자나 범죄자를 추적할 때도 사용된다.
그러나 최근 영화에 등장하는 GPS 추적장치를 보면 과장된 측면이 많다. 가까운 미래에는 실현되겠지만 아직 GPS로 실내에서 완벽하게 위성신호를 잡을 수 없다. 신호가 교란되거나 차단되기 때문이다. 실내가 아니더라도 빌딩이 들어선 도심이나 나무가 빼곡한 숲속에서는 GPS의 효율이 떨어진다.
관성항법장치도 완벽하지는 않다. 단기간에는 정확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차가 커진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찾기 위해 추측항법(관성항법)과 고정위치항법에서 얻은 정보를 조합했다. 지금도 선박이나 항공기, 우주선은 두 기술을 융합한 통합항법시스템을 사용한다. 통합항법시스템은 두 항법을 사용해 오차를 보정하며 성능과 안정성을 높였다.
21세기 들어 중요해진 항법은 지구에서 위치를 찾기보다 실내에서 위치를 찾는 방법이다.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은 소방관이 화재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사망했을 때 “세계의 바다를 돌아다니는 고래를 추적하고 화성 표면에 있는 돌의 위치를 cm까지 정확하게 알아내는 기술을 가진 미국이 단순한 2층 건물 안에 쓰러진 소방관의 위치를 추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말이 되는가?”라고 물었다. 하지만 실내에서 위치를 찾는 정확한 항법은 현재의 기술로도 아직 무리다.
불난 건물 안에서 사람 찾는 기술
사례 3처럼 화재가 났을 때 인명을 구조하는 작업은 시간을 다투는 중요한 문제다. 실제로 미국 화재현장에서 일어난 소방관 참사의 16%가 건물 안에서 길을 잃거나 갇혀서 발생한다고 한다.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조난자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했다면 훨씬 많은 사람을 구조했을 것이다.
9.11테러 이후 미국통신연방위원회(FCC)는 휴대전화에 반드시 사용자의 위치를 67%의 확률로 50m 오차범위 내에서 추적하는 기능을 첨가하도록 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항법이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 하나로 통합된 최적의 항법기술은 개발되지 않았다. 실외 항법은 대부분 GPS를 이용해 FCC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킬 수 있지만, 실내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위치를 찾는 기술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실내 위치를 추적하는 기술을 많이 연구한다. 1m 오차 이내로 위치를 찾는 기술은 소방관을 찾을 때 사용된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 주위에 벽을 통과하는 전파를 사용하는 이동기지국을 설치하면 건물 안의 소방관의 위치를 알 수 있다.
G P S 를 넘어서
A-GPS(Assisted-GPS) 기술은 GPS 수신기가 실내에서 위성신호를 받지 못하는 단점을 보완한다. 위성신호를 실내에서도 교신이 가능한 휴대전화 통신망을 통해 전달한다. 그러나 기지국에서 단말기에 전달하는 정보가 많아 전용채널을 차지해야 하고, 사용자가 늘어나면 응답속도가 느려진다는 단점이 있다.
유비퀴터스 항법은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할 것이다. 2008년에는 유럽연합이 갈릴레오 위성을 통해 미국의 GPS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성항법시스템을 구축한다. 무선랜이나 와이브로(Wibro, Wireless Broadband), 전자태그(RFID) 같은 무선통신망을 이용해 한정된 지역에서 정확한 위치를 찾고, 지구의 자기장을 감지하는 센서를 개발해 추측항법으로 위치를 찾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원시시대부터 사용된 항법은 현재 군사용 유도무기부터 교통항공 산업, 개인 정보통신기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미래에는 어떨까.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항법은 모든 산업에서 필수적인 기술이 된다. 항법시스템을 전공으로 삼아 열심히 공부한다면 언젠가 영화처럼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위치를 정확하게 추적하는 미래기술을 현실로 만드는 주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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