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닉스 - 생활 환경 바꾸는 빛의 기술 | ||||||||||||||||||||||
---|---|---|---|---|---|---|---|---|---|---|---|---|---|---|---|---|---|---|---|---|---|---|
|
||||||||||||||||||||||
포토닉스 - 생활 환경 바꾸는 빛의 기술 | 글 | 이병호/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부교수ㆍbyoungho@snu.ac.kr | 빛이란 과연 무엇일까. 정말 원자나 전자와 같은 입자들의 모임일까, 아니면 음파나 물결같은 파동일까. 태양빛은 무지개 빛을 모두 갖고 있는데 왜 하늘은 푸르고 저녁노을은 붉게 보이는 걸까. 레이저 대신 형광등 불빛을 광통신에 쓰지 못하는 것은 또 왜일까. 포토닉스가 그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다. 빛, 그 매력적인 이야기
빛에 대한 인류 사고의 변천과정을 살펴본다는 것은 꽤나 흥미있으면서도 유익한 일이다.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는 “모든 공간이 탄성적인 물질로 채워져 있고, 이를 매질로 전달되는 압력이 빛”이라고 생각했다. 빛을 소리나 물결파와 같은 파동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비슷한 시기 스넬(1580-1626)과 페르마(1601-1665)는 빛의 진행과 굴절, 반사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에 비해 빛의 직진성과 ‘편광’ 특성에 주목한 뉴턴(1642-1721)은 빛이 입자라는 주장을 강력히 편다. 당시만 해도 소리처럼 파동은 매질의 진동방향과 파동의 진행방향이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파동으로 가정하면 편광 현상을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특히 당시 뉴턴의 권위란 대단한 것이어서 빛이 입자라는 그의 주장은 무려 한세기 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801년 영(1773-1829)의 간섭실험은 빛의 파동성을 증명해낸다. 프레넬(1788-1827) 역시 빛이 파동이라는 관점을 갖고 빛의 여러 성질들을 명확히 설명했다. 결국 빛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상호작용하면서 공간을 전파해 나가는 전자파라는 사실이 맥스웰(1831-1879)에 의해 이론적으로 정립된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플랑크(1858-1947)의 ‘양자론’을 근거로 아인슈타인(1879-1955)은 빛의 입자설을 주장한다. 빛 에너지가 양자화된 입자들로 구성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를 우리는 ‘광자(photon)’라고 부른다. 아인슈타인은 빛이 입자라는 관점에 입각해 당시 실험에서는 발견됐으나 파동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광전효과’를 설명했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발전하면서 모든 입자는 파동성도 가지며 정확한 설명을 위해 확률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빛은 한마디로 파동성을 갖는 입자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빛의 성질에 대한 그간의 논란도 흥미진진 하지만 이를 일상생활로 끌어온 광공학 또한 매우 흥미로운 분야다. 광학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느껴보고 싶다면 안경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빛의 굴절현상을 이용하여 약한 시력을 보완해주는 안경은 광학이 응용된 가장 중요하고 일상적인 예다. ‘라식 수술을 하면 될텐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것 역시 광학의 산물인 레이저를 사용하는 수술이다. 또 다른 예는 전자제품의 디스플레이를 들 수 있다. 최근 쓰리엠(3M)이 출시한 얇고 투명한 스티커는 빛의 회절을 응용한 제품이다. 이 스티커를 휴대전화 액정위에 붙이면 화면에서 나오는 빛을 회절시켜 불필요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빛의 진행 방향을 보기 좋게 바꿔준다. 스티커를 붙이기 전보다 휴대전화의 액정화면이 훨씬 선명해지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비록 사소하지만 이미 일상생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보통 포토닉스는 광자공학, 광자기술, 광자학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 특히 레이저를 이용하는 정보 통신 기술을 일컫는 말이다. 신비감 자아내는 인공의 빛, 레이저
레이저는 태양광이나 전등과는 다른 몇가지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즉 강한 방향성과 세기, 단일색(단일한 파장), 간섭성 등이 그것이다. 자연에서 생긴 빛에서는 이같은 성질들을 모두 갖춘 경우를 보기 힘들다.이런 성질은 레이저 장치 안에서 광자가 자신과 똑같은 특성을 갖는 쌍둥이들을 마구 복제해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처럼 광자가 자신의 쌍둥이를 복제하는 현상을 유도방출이라 부르는데 1917년 아인슈타인이 이를 처음 이론화했다. 레이저란 바로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물질을 2개의 거울 사이에 놓고, 광자들이 거울에 반사돼 오가면서 쌍둥이들을 계속 복제해 증폭시키는 원리를 따른다. ‘레이저’(laser)란 말도 ‘유도방출에 의한 빛의 증폭’이라는 뜻이 ‘light amplification by the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의 앞글자들을 따서 만든 말이다. 1917년에 밝혀진 광자의 ‘쌍둥이복제’(유도방출)라는 현상만 이해한다면 레이저를 만드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지만 실제 이 아이디어가 나온 것은 1950년대에 접어들면서다. 빛보다 다루기 쉬운 마이크로파에 대해 연구가 먼저 시작됐다. 이처럼 빛에 대한 연구가 잘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이 아이디어로 노벨상을 받은 타운스(1915-)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다수 물리학자들은 전자공학과 증폭기에 대해서 몰랐고, 전기공학자들은 양자역학을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공학자들과 자연과학자들이 함께 일할 수 있었고 물리학자들이 비로소 전자공학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이 교류하기 시작하면서 레이저가 태어났다는 얘기다. 초고속 광통신 정보의 전달자
광펄스는 진공에서 퍼지지 않지만, 광섬유 안에서는 퍼지는 성질이 있다. 이를 줄이려면 단색성이 좋은 레이저를 광통신에 사용해야 하고 이를 위해 반도체 레이저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그런데 광통신은 왜 필요할까. 초고속 장거리 통신을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전화에서 통화 목소리는 초당 6만4천개의 디지털 비트(bit)로 변환된다. 그런데 지금의 통신환경은 음성 통신보다 인터넷 등 데이터 통신량이 훨씬 늘어나는 추세다. 현재 광통신으로는 초당 1백억 비트의 정보 전송이 가능하고 더 나아가 그보다 1백배 이상 전송률을 높이려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1초에 1백억개의 비트를 전송한다는 것은 1초에 50만쪽 분량의 문서를 전송하는 엄청난 능력이다. 2백50쪽짜리 소설책 2천권의 정보를 단 1초에 수천 km를 날려 보낸다는 얘기다. 우리는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다. 집안에 앉아서도 외국 홈페이지를 방문할 수도 있고, 검색창을 통해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손쉽게 찾아낼 수도 있다. 만일 해저 광케이블과 초고속 장거리 광통신 기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일부에만 설치돼 있지만, 머지않아 대부분의 가정들까지 광섬유가 깔리는 ‘집까지 광섬유’(FTTH)도 현실화될 것이다. 이를 통해 원하는 비디오를 아무때나 주문해 시청하거나 깨끗한 동영상 화상 전화통신을 하는 일이 가능해 질 것이다. 최근 통신 시장의 불황으로 관련 기업들이 위축돼있는 실정이다. 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시장 수요보다 연구가 너무 앞서갔기 때문에 발생한 상황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요구하는 정보량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이에 따른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려면 지금보다 더 발전된 기술의 개발이 불가피하다. 홀로그램, 불가능은 없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그만큼 인간은 시각에 민감하며 대부분의 정보도 시각에서 얻는다. 시각정보를 재생하려는 노력은 선사시대부터 있어왔다. 고대벽화가 그런 사례다. 이처럼 그림에서 흑백TV로, 컬러TV로, 다시 고해상도 디지털TV로 발전해온 영상기술은 이제 3차원 영상을 재생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물론 지금도 놀이공원에 가면 안경을 끼고 입체 영상을 관람하는 영화관이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안경을 껴야만 하는 불편함이 있고 장시간 관람시 피로감이 오는 단점 때문에 대중매체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안경 없이도 살아있는 듯한 입체영상을 볼 수 있는 홀로그램 방식이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누구나 처음 홀로그램을 보면 그 자리에서 매료되고 만다. 분명히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빈공간인데 어떻게 실제 물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사실 우리가 어떤 물체를 본다는 것은 물체 표면에 반사된 빛이 사람 눈에 전달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물체가 없어도 물체가 반사한 빛만 재생해 낼 수 있다면, 인간의 눈은 그 물체가 실제 공간에 있을 때와 같은 자극을 느낀다. 따라서 관찰자는 그 자리에 그 물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홀로그램은 이처럼 물체가 반사한 빛을 저장했다가 그대로 재생하는 메커니즘을 이용한다. 그런데 필름이나 전자소자처럼 빛에 반응하는 물질들은 그 세기에만 반응하기 때문에 파동성을 갖는 빛(광파)의 위상에는 반응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광파에 관한 모든 정보를 직접 기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결국 이를 위해 두 방향에서 오는 빛의 간섭 패턴을 기록해야만 한다. 간섭 패턴은 결국 세기의 패턴이지만, 이 패턴은 두 빛의 상대적인 위상차에 따라 다르다. 결과적으로 빛의 위상 정보를 암호화해서 기록하는 셈이다. 다시 이를 재생하려면 복호화 과정이 필요한데, 의외로 그 방법이 간단하다. 이처럼 빛의 위상 정보를 함께 기록했다가 복원해 원래 광파를 그대로 재생한 것을 홀로그램이라고 하며 이는 전자현미경을 연구하던 가보르(1900-1979)가 1948년에 처음 고안한 것이다. 홀로그램이란 말은 그리스어로 ‘전부 기록한다’는 단어의 조합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레이저가 나오기 전이라서 간섭성이 좋은 광원을 얻을 수 없었다. 또하나의 문제였던 복원 영상이 원치 않는 빛과 겹쳐 보이는 현상은 레이저의 발명 후, 미국 미시간대 연구진에 의해 해결됐다. 통신이론과 광학을 접목한 이 연구는 홀로그램의 실용화의 물꼬를 튼 사건이 됐다. 평소 일상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홀로그램은 신용카드에 위조방지용으로 붙은 무지개 홀로그램이다. 이 홀로그램의 개발자이자 폴라로이드사에서 근무하던 벤튼(1941-2003)은 그뒤 미 매사추세츠공대(MIT)로 자리를 옮겨 얼마전까지도 동영상 홀로그램에 관한 연구를 주도했다. 동영상을 전송해 실시간 재현하는 이상적인 무안경식 고화질 3차원 TV기술이 실생활로 들어오려면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하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비롯한 많은 SF영화와 소설에서 펼쳐지는 이런 꿈들은 언젠가는 실현될 것이다. 현재의 기술 수준이 낮다고 해서 앞으로 실현 불가능할 것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Never say Never.’(절대로 안 될 것이라고 절대 말하지 말라.) 연구 방법 까다로운 공학
포토닉스는 그밖에도 응용 범위가 넓다. 이를 테면 최근 주목받고 있는 ‘포토닉 크리스탈’이라는 기술은 고체물리 이론을 광학에 적용한 새로운 빛 제어 기술이다. 반도체 기술과 접목시키면 새로운 종류의 광전자 집적회로가 등장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자연과학과 공학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운 학문일까. 좀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이긴 하다. 보통 자연과학이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면, 공학은 그 중 실용화될 만한 것들을 골라 상용화한다. 그 과정에서 실용화에 걸림돌이 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는 공학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들이다. 예를 들어 초당 1백억 비트를 보내던 것을 초당 4백억 비트를 보내려고 한다면 많은 기술적인 제한에 부딪히게 된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다시 자연과학자들의 관심과 연구를 촉발하기도 한다. 또한 공학에서는 비용이라는 요소를 매우 중요시 한다. 예를 들어 차세대 대용량 광메모리를 개발하는데, 두가지의 다른 기술로 각각 다르게 접근하는 2개의 연구팀이 있다고 하자. 두팀 모두 훌륭한 제품을 개발했다고 해도 소비자들은 좀더 값싼 제품을 구매할 것이기 때문에 낮은 가격에 좋은 성능을 내는 쪽이 선택될 것이다. 따라서 공학자와 기술자들은 경제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인가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결국 공학 연구에는 자연과학보다 더 많은 부분이 고려될 수밖에 없으며, 그런 점에서 공학이 좀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학문이고 많은 사람들이 활발히 경쟁적으로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는 점, 그래서 활력이 넘치고, 도전할 부분이 많다는 점은 공학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그렇다면 포토닉스의 미래는? 비선형광학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던 블룸베르겐(1920-)은 이에 대해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 “미래는 항상 젊은이들에 달려있다. 특히 포토닉스는 똑똑한 학생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학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가 미처 예상치 못한 새로운 기술이 출현할 것이다.” 이병호 교수는 1987년 서울공대를 수석 졸업한뒤 1993년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에 재직중이다. 제5회 젊은과학자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국제광공학회의 석좌회원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