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공학
1백년 역사 가진 전자공학의 집합체
| 글 | 이정우/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조교수ㆍjunglee@ee.snu.ac.kr |
지난 10년 사이 휴대전화 사용인구가 급상승했다. 급작스런 사용량 증가는 이동통신 기술이 최근에야 발전한 덕분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동통신공학은 그 역사가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꾸준히 발전해온 분야다. 이동통신공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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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사이에 우리나라의 휴대전화 사용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21세기 통신혁명은 휴대전화로 대표되는 이동통신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이동통신을 가능하게 해준 기술은 최근에야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닌가 하고 사람들이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동통신의 뿌리는 무선통신으로, 그 역사는 1백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선통신시대를 연 사람은 이탈리아인 마르코니. 1895년 그는 무선전신을 발명했고 1901년 영국 콘월과 캐나다 노바 스코시아를 잇는 최초의 무선전신을 성공시켰다. 이 사건은 이동무선통신 역사의 시작점이 됐다.
마르코니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0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사실 그는 엔지니어, 즉 발명가에 가깝다. 그런 그가 물리학상을 수상한 것은 당시 공학과 물리학의 경계가 불분명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르코니는 또한 성공적인 사업가였다. 그는 영국에서 마르코니라는 통신장비 회사를 세워 큰 성공을 거뒀다. 1937년 그가 사망했을 때 전세계의 라디오 방송국들은 2분간 추모 묵념시간을 가졌다. 통신산업에 미친 그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40년대 휴대폰은 버스크기
마르코니 이후 무선통신의 역사는 방송으로 이어진다. 1900년 에디슨의 조수였던 페센덴이 AM 방송기술을 발명했다. 1906년 드포리스트는 처음으로 이동하는 자동차에 음성을 전송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리고 1929년과 1933년 사이에는 RCA의 연구원이었던 줘리킨과 판스워스가 TV를 발명했으며, 1934년에는 암스트롱이 FM을 발명했다.
1954년에는 TV 음성에서 FM 방식을 채용하려 했던 RCA와 암스트롱 간의 특허권 분쟁이 있었다. 이 와중에 암스트롱은 자살하고 만다. 그리고 1백만달러(현재 약 1천만달러)나 되는 합의금이 그의 미망인에게 지급됐다.
이동통신 단말기는 영어로 cellular phone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셀(cell)은 현대적인 이동통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셀 개념은 1947년 미 AT&T 벨연구소에서 발명됐다.
이 개념은 넓은 지역을 작은 구역(셀)으로 나눠 주파수를 재활용함으로써 전체 사용자 수를 늘린다는 획기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당시는 전화교환기도 기계식이었던 시절이었다. 실제로 이 개념이 실현된 것은 40년 뒤인 1980년대. 이때에 이르러서야 셀 개념을 실현시킬 수 있는 반도체 기술이 등장했던 것이다.
셀 구조 개념이 처음 등장했던 당시는 들고 다닐 수 있는 휴대전화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도 없었다. 만약 현재 사용하는 휴대전화기를 그 당시 진공관 기술로 만든다면 크기는 아마도 대형버스보다 크고 1대당 가격은 수십억원이나 될 것이다. 이처럼 반도체 기술의 발전이 오늘날 이동통신 산업을 가능하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동통신의 핵심기술인 반도체 기술의 발전은 트랜지스터의 발명에서 시작된다. 트랜지스터는 1947년 벨연구소에 근무했던 바딘, 브래튼, 쇼클리 세사람이 발명했다. 이 세사람은 그 업적으로 1956년 노벨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다음해에는 현대 통신이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섀년이 벨연구소에서 이동통신공학의 이론적 근간이 되는 정보이론을 발표한다. 그리고 1958년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킬비와 페어차일드반도체의 노이스가 집적회로(IC)를 발명했다. 이들 역시 2000년에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
IC의 발명 이후 칩의 집적도(한 IC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의 개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 속도를 1964년 페어차일드반도체에 있던 무어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집적도 18개월마다 IC의 직접도는 배로 늘어난다.” 이를 무어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신기하게도 4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 법칙이 잘 맞고 있다.
이러한 비약적인 집적기술의 발전이 1940년대 버스보다도 크게 만들어야했던 휴대전화기를 오늘날과 같은 크기로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동통신공학은 모든 전자공학 기술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반도체, 통신망, 통신 공학이론, 소형 축전지, 안테나 기술 등의 결합체가 곧 이동통신이다. 이 기술들 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태어난 것도 있다. 바로 이동통신에서 사용하고 있는 주파수인 1기가헤르츠(10억헤르츠) 이상의 마이크로파다. 이 주파수 대역의 기술은 레이더와 같은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됐는데, 그 획기적인 계기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이때 많은 안테나와 마이크로파 소자 기술이 개발됐으며, 그 기술들이 연합군의 승리를 이끄는데 도움이 됐다. 그리고 현대 휴대전화 기술의 발판이 됐다.
여배우가 발명한 CDMA
그렇다면 이동통신 시스템은 언제부터 상용화되기 시작했을까. 최초의 상용 이동통신 시스템은 셀 개념이 나오기 1년 전인 1946년 AT&T에서 개발됐다. 당시의 시스템은 자동차 전용으로 가격이 너무 비싸 극소수의 부자와 기업만이 사용했다.
실질적인 상용화는 1세대 이동통신이 등장하면서부터다. 1978년 셀 개념을 도입한 아날로그 방식의 1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이 시카고에서 시험 가동됐다. 당시 휴대전화기의 크기는 서류 가방 정도여서 대중화가 어려웠다. 1세대는 주파수분할다중접속방식(FDMA)를 사용했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반도체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휴대전화기는 어른 팔뚝 크기로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이동통신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2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은 1993년 미 퀄컴에서 시작됐다. 2세대는 코드분할다중접속방식(CDMA)에 기반하고 디지털 방식을 사용한다. 이 2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우리나라는 이때 CDMA 원천 기술을 보유한 퀄컴에 엄청난 액수(휴대폰 판매액의 10%)의 로얄티를 지불했다. 원천 기술을 가지지 못한 서러움을 톡톡히 맛보아야만 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미래의 이동통신 기술에서는 자체 기술을 확보해 외국 기술 의존도를 많이 줄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젊은 공학도들이 이동통신 분야에 뛰어들어 능력을 발휘해야 하겠다.
그런데 CDMA 기술에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가 숨어있다. 바로 할리우드의 한 여배우가 CDMA를 발명했다는 사실. 그 주인공은 헤디 라마. 그녀는 1940년대 할리우드에서 클라크 케이블, 스펜서 트레이시와 같은 배우들의 상대역이었다. 당시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 중 한명으로 꼽힐 정도로 미모가 출중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녀는, 나치 추종자이며 무기 판매상을 하는 프리즈 맨들이라는 사람과 4년간 결혼생활을 했다. 그녀는 무기 사업 관련 모임에 남편의 미모 과시용 부인으로 동행하면서 첨단 무기 기술에 대해 듣고 배운다. 나치와 남편에 대해 환멸을 느낀 그녀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영국을 거쳐 미국 할리우드에 와서 영화배우로 데뷔하게 된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면서 라마는 애국심을 발휘해 미국이 승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생각하다가, 오스트리아에서 배운 첨단 무기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친구였던 작곡가 조지 앤트하일과 함께 어뢰 유도장치에 관한 특허를 신청한다. 전파로 유도하는 어뢰는 방해 전파에 약하다는 점에 착안한 두 사람은 유도 전파의 주파수가 불규칙하게 변화하게 하는 아이디어로 특허를 신청했다. 이 아이디어는 1942년 특허를 받았다. 이들이 개발한 아이디어가 현재 쓰이는 CDMA 기술의 근간이 됐던 것이다.
그녀가 고안한 방법은 당시 기술로서는 실현 불가능했다. 실제로 20년 뒤에나 군사기술에 이용된다. 특허권은 20년만 유효하기 때문에 결국 이 두 발명자는 아무런 로열티를 받지 못하고 말았다. 그 특허권이 현재까지 유효했다면 그녀는 아마도 돈방석에 앉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1997년 80대의 할머니가 된 그녀는 CDMA기술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역사적으로 중요한 발명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벌비(Bulbie)상을 수상했다.
한편 유럽은 1988년 독자적으로 개발한 시간분할다중접속방식(TDMA)에 기반한 GSM 시스템의 2세대 방식을 채택했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휴대전화기는 미국에서 로밍(다른 지역으로 옮겨간다는 뜻)이 가능하지만 유럽에서는 로밍이 불가능하다.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는 비동기 CDMA방식에 기반한 것으로 2001년 일본의 NTT 도코모가 시작했다. 3세대가 2세대와 차별화되는 점은 인터넷과 같은 데이터 통신 그리고 화상 멀티미디어 통신이 지원된다는 점이다.
4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은 아직 연구단계다. 2010년을 보급 예정으로 연구개발되고 있다. 현재 국내 유수 기업과 연구소들이 이에 대한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왕성한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4세대 이동통신의 목표는 디지털 TV 또는 인터넷 데이터를 기존의 초고속 인터넷망(ADSL)과 같은 속도로 휴대폰, 노트북, PDA 등에 전송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4세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1세대 방식인 FDMA의 변형된 형태를 접속방식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5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은 아직 논의도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5세대 방식도 2030-2040년을 목표로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제공되는 데이터 전송속도는 4세대보다도 약 10-20배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5세대가 상용화될 때면 기존의 방송과 통신업계가 통합되는 시대가 오리라고 본다. 이러한 4세대 또는 5세대 이동통신 시스템은 현재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 연구하게 되는 것이다.
물리학과 수학 동원
그렇다면 이동통신 공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공부를 해야할까. 이동통신 공학에는 물리학과 수학과 같은 기초학문이 응용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치를 측정하는 GPS가 그렇다. 여기에서는 기지국 간의 타이밍을 맞춰줘야 하는데 이때 고등 물리학 이론이 사용된다. 여러 위성에서 오는 신호의 시간차를 이용해 위치를 측정하는 GPS는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동원해야 한다. 중력에 따른 위성으로부터 오는 주파수의 변화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동통신공학에서는 수학이론이 동원되기도 한다. 현대 대수학과 같은 고등 수학이 이동통신 시스템의 오류 신호 정정 및 암호화에 이미 놀라울 정도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이동통신공학에는 어떤 분야들이 있을까. 분야를 나누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우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분야를 나눌 수 있다. 수학이 많이 이용되는 통신이론은 소프트웨어 분야라 할 수 있고, 휴대전화기나 기지국에 들어가는 IC를 개발하는 반도체 설계분야는 하드웨어 분야라고 한다. 설계 자동화가 되어 하드웨어를 설계하는 사람도 직접 전선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지 않고, 거의 모든 설계를 컴퓨터에서 설계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수행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구분이 모호해져서 두부분을 동시에 한사람이 설계하기도 한다.
이동통신 시스템의 구성요소로 분야를 구분할 수 있다. 이동통신 시스템은 크게 3개의 요소로 구성돼 있다. 바로 이동 단말기(휴대전화기), 기지국, 그리고 기지국을 연결시켜주는 유선 통신망이 그것이다.
휴대전화기는 소형화, 경량화, 저전력 소모 기술의 집약체이다. 그래야만 갖고 다니기 편리한 휴대전화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위의 조건을 만족하는 IC칩, 소형 배터리, 고감도 안테나 기술 등을 개발해야만 경쟁력있는 제품이 나올 수 있다. 서구인들에 비해 손재주와 감각이 섬세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동통신공학은 잘 맞는 분야인 것 같다. 국내 기업들이 휴대전화기 생산에서 세계 2위권이라는 점이 그 점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휴대전화기와 달리 기지국은 여러 사용자의 신호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고 높은 안정성이 요구된다. 또한 크기에 대한 심각한 제한이 없으므로, 보다 복잡하고 고성능인 기술들이 들어갈 여지가 많은 분야다.
마지막으로 이동통신망을 살펴보자. 이동통신망을 흘러 다니는 신호는 90% 이상의 시간을 유선망에서 보낸다. 이동통신망에서 무선인 부분은 실제로 극히 일부분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이동통신 시스템을 전공하더라도 인터넷과 같은 유선통신망에 대해서도 깊게 파고 들어야 한다.
원천기술로 막대한 수익
이동통신을 전공하면 우선 고등 통신이론을 연구하는 연구자(연구소, 기업, 대학)가 될 수 있다. 또는 실질적인 엔지니어링(설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벤처기업이나 대기업에서 소프트웨어 또는 하드웨어 전문 엔지니어가 되기도 한다. 벤처기업의 관리자로서 사업이나 마케팅을 담당하는 전문 경영인의 역할을 맡는 경우도 흔하다.
CDMA 원천 기술을 가진 퀄컴은 비터비(Viterbi)라는 매우 저명한 통신이론가가 벤처기업으로 창립했다. 한국 시장의 성공에 힘입어 현재는 매출규모가 수조원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심지어 이 회사가 위치한 미국 샌디애고에는 이 회사이름을 딴 야구 경기장이 있을 정도다. 비터비는 현재 회장에서 은퇴했는데, 그가 소유한 주식 총액은 수조원에 이른다. 이와 같이 드물지만 원천기술만 잘 개발하면 벤처기업가로서 크게 성공할 수 있는 길도 있다.
또 이동통신 산업 분야에서는 지적 소유권에 관한 분쟁이 많다. 이러한 지적 소유권의 사업적 측면을 다루는 전문가가 될 수 있으며, 어느 정도 엔지니어로서 경력을 쌓은 후 이 분야의 특허 전문 변호사(변리사)도 될 수 있다.
현재 이동통신 산업은 반도체 산업과 함께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의 수십년 동안 이와 같은 추세가 계속되리라 본다. 따라서 이동통신 분야의 전망은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고급 연구인력이 모자라는 추세가 계속될 전망이다. 대학 진학을 앞둔 중고등학생들이 이공계로 진학해 이 분야를 전공한다면 다양한 진로의 선택이 가능할 뿐 아니라 직업의 안정성이 보장되고 경제적인 보상도 크리라고 본다.
한편으론 이동통신은 단순한 기술적인 측면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며 정보화 사회를 이끄는 면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의 발달에 기여하는 사회 간접자본의 측면도 갖고 있다. 이 점에서 이동통신 분야의 전공은 단순히 개인의 영달만을 위한 선택이 아니고 사회에 기여하는 측면도 매우 크다고 말할 수 있다.
| FDMA |
FDMA(Frequency Division Multiple Access)는 각 사용자가 서로 다른 주파수를 사용함으로써 충돌을 피하는 방식
| CDMA |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는 각 사용자 서로 다른 암호(부호)를 사용해 충돌을 피하는 방식
이정우 교수는 1988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미 프린스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94년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4-1999년에는 데이비드 사노프 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고, 1999-2002년에는 루슨트테크놀러지의 벨연구소에서 이동통신 시스템을 연구했다. 2002년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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