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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 인간 이해 바탕으로 삶 설계하는 공학 예술
분야 산업기술/건축 날짜 2011-04-05
건축학, 인간 이해 바탕으로 삶 설계하는 공학 예술
| 글 | 김광현/서울대 공대 건축학과 교수, 건축가ㆍkkhfile@snu.ac.kr |

인간이 살 근거지를 땅에 세우는 일을 하는 건축. 다른 어떤 학문보다도 인간의 생활을 찬미하는 예술로 불리는 까닭이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축의 참모습을 만나보자.

건축은 집을 짓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집’이란 그저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집이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래서 건축의 역사는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인 문화를 나타내는 역사가 된다.

땅에 인간의 삶을 담는다
 
   
 
 
인간이 생겨나 자신의 주거를 짓던 일을 생각해보자. 인간은 길을 내기 전에 집을 지었고, 그렇게 생긴 일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건축은 언제나 현대적인 과제를 안고 발전하면서도 그 속에서 과거를 잃지 않았다. 건축이라는 행위는 어느 시기에 갑자기 새로 생겨났다가 또 어느 시기에 갑자기 쇠퇴하는 학문 분야가 아니다. 건축은 미래를 포용하면서 과거와 늘 이어져 있다. 건축이 재미있고 가능성이 풍부한 이유는 단순히 집을 짓는 일에 있는 것이 아니다. 대지 위에 집을 짓는 일에는 도시 속에 나를 표현하는 가능성이 있으며, 건축과 상반되는 다른 요인들 안에서 화해의 요소를 찾는 기쁨이 있다.

사람이 가진 직업 중에 건축가가 있다. 예부터 집을 세우는 것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더욱이 혼자 지을 수는 없어서 언제나 공동의 작업으로 집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집은 단순히 비바람을 막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보장하는 자신의 신체와 같은 것이었다. 나아가 자신과 외부 세상의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었다. 이런 까닭에 세계적인 종교학자 밀치아 엘리아데는 “집은 세계의 모형이다”라고 말했다. 건축은 인간이 거처하는 장소와 그 장소를 에워싸고 있는 세상을 축소시켜 놓은 것이라는 뜻이다.

건축가는 집을 짓기 위해 땅을 생각하고, 그 속에 들어가살 사람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안팎에서 영위하게 될 여러 행동과 공동의 바람을 생각한다. 이런 것을 바탕으로 기초를 두고 바닥을 만들며 벽을 둘러친다. 그러기에 집을 짓는 학문, 곧 건축은 구조적으로만 안전하고 비바람에 잘 견디며, 물이 잘 새지 않도록 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 이상이다. 집은 땅의 한 조각인 어떤 자리를 잡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인간의 삶이 담겨 있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건축이라는 학문은 사람이 사는 근거지를 땅에 만드는 일을 배우는 일이요, 건축가는 이런 일을 실천하는 이를 말한다. 크건 작건 건축물이 세워질 땅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땅 조각의 모양이 다르고, 위치도 다르며, 햇빛을 받는 각도도 다르다. 건축가는 이와 같이 똑같지 않은 땅 위에 사람이 살 공간을 구획하고 근거지를 만들어주는 일을 한다. 이런 관점에서 건축가는 땅이라는 물리적인 대상을 다루고 구조물을 앉히는 여러 지식과 경험을 배우지만, 동시에 사람의 삶을 생각하고 걱정하고 편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건축이 한편에서 보면 공학이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사람을 다루고 사람의 행위를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영역에 걸쳐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건축을 한다는 행위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며 실존적인 일인가. 혹시 당신이 건축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바꿔 말해서 이 땅에 집을 지어 그 안에 사람의 삶을 담는 일에 열심이고 싶다면, 이와 같이 땅과 하늘 사이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인간 위해 집 짓는 기쁨과 매력
먼 옛날 이웃하는 사람들은 힘을 모아 집을 지으면서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눴다. 그러다가 사람이 하던 일을 나눠 하게 되자 집을 짓는 전문가가 생겨났다. 집을 짓는 전문가인 건축가는 이웃과 함께 집을 지을 때 나누던 공통의 염원을 이루도록 전념하는 직업인 셈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사실이다. 건축가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고도 훌륭한 직업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 있다. 미국 철학자 존 듀이는 “건축은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훨씬 우리 공통의 인간 생활을 찬미하는 예술이다”고 표현한 바 있다.

필자는 최근 경기도 연천 근처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에 위치한 언덕에 한 주택을 완성했다. 처음 이 땅을 찾아갔을 때는 나무가 많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그러던 땅에 벽을 세워 하늘과 만나고, 이쪽에서 저쪽에 이르는 숲의 한가운데를 걷듯 주택의 한가운데 두개의 마당을 둬 숲을 주택 안에 끌어들였다. 방마다 제각기 다른 표정을 가진 땅과 강, 산을 마주하고 있어서, 어떤 방은 땅속에 파묻힌 듯 느껴지고, 어떤 방은 마루 바닥과 철골 프레임이 묶어내는 저편의 경치를 바라보고 있기도 한다.

이 집의 건축주는 주택을 의뢰해서 지금 완성될 때까지 집이 돼가는 모든 과정을 필자와 함께 의논했고, 기쁨을 같이 했다. 그리고 어떤 자리에서는 자신이 부탁한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자기와 같은 문외한도 건축이란 정말 땅 위에서 만들어지는 예술이라고 필자를 대신해 다른 이들에게 진지하게 설명했다. 이것이 건축을 하고 집을 짓는 기쁨이요, 매력이라 할 것이다.

흔히 건축을 두고 공학과 예술이 결합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이 설명은 옳지만, 건축을 설명하기에 다소 부족한 데가 있다. 건축은 공학과 예술을 결합한 것이 아니라, 공학 이전에 인간의 존재에 관한 것이며, 예술 이전에 인간의 기쁨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한 건물을 생각해보자. 20세기 최대의 건축가 르 코르뷔제의 작품인 롱샹 성당은 1954년에 세워졌다. 높은 언덕 위에 자리잡은 이 성당을 위해 건축가는 수많은 조건을 분석한 결과 자신의 머리에 스쳐가는 교회의 모습을 빠른 솜씨로 스케치북에 기록했다. 커다란 지붕을 바치는 두 세장의 벽기둥과 그 사이를 비춰오는 빛과 그림자. 제단에는 제대와 독서대를 비롯한 미사에 필요한 도구가 건축물이 만들어낸 공간 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 그림은 잔디가 깔려 있는 잔잔한 땅과 푸른 하늘 사이에 놓여 있다.

성당 안쪽의 벽은 벽이라기보다는 빛의 소리를 토해내는 빛의 나팔이다. 크고 작은 빛의 표정은 경건하게 기도하는 이들 옆에서 신의 목소리를 대신 전해 준다. 거장이 만든 성당 안에서 기도하는 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는 이들의 바람과 기쁨을 미리 알고, 그들이 신의 공간 속에 머물기를 건축가는 얼마나 신중하게 계획했을까. 건축이란 막연히 멋있는 일이 아니다. 건축은 사람의 생각과 신념과 삶을 드러내는 일이요, 찬미하는 일이다.

공학이면서도 예술 측면 중요해
 
   
 
 
서울과 부산 같은 대도시의 야경을 눈여겨보자. 특히 남산과 같은 산에 올라가 대도시를 내려다보면 수많은 고층건물과 밝게 빛나는 건물의 창, 고속으로 움직이는 차의 곡선들, 빛나는 네온사인의 물결 등이 보인다. 건축은 도시를 이루는 것이며, 도시를 생기 있게 하는 것이다. 건축이 없다면 우리는 도시에 거주할 수도 없고, 모여 살 근거도 없다. 어떤 이는 이런 풍경을 각박해지는 도시의 현실로 볼지 모르나, 오히려 이런 대도시의 풍경은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대도시와 대규모 건축물을 누가 설계하고 만드는가. 건축가는 이렇게 거대한 공간을 창조하는 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건축학과가 공대에 속해 있어서, 건축을 단지 공학의 일부로만 보기 쉽다. 건축은 일단 건물을 만드는 것이므로 사물을 만드는 분야를 다루는 공학에 속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건축은 예술과 공학이 합쳐질 때만이 성립되는 매우 독특한 분야다. 건축을 뜻하는 영어 architecture는 ‘가장 우월하다’는 ‘archi’와 ‘테크놀로지’를 말하는 ‘tecture’가 합쳐진 말이다. 다시 말해 architecture란 ‘큰 기술’이라는 뜻이며, 건축이란 ‘모든 기술을 포용하며 그 위에 있는 서있는 분야’라는 말이다. 이런 이유에서 고대로부터 이 큰 기술에 탁월한 사람은 과학적인 기술자로 불려졌고 이와 함께 예술적인 기능에 뛰어난 문화인으로서 존경받았다.

건축이 무엇을 하는 학문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와 비슷한 뜻을 가진 건물(building)이라는 말과 구별할 필요가 있었다. 건축(architecture)이란 미적이며 기능적인 규범을 지키면서 구조물을 설계하고 축조하는 예술과 과학 또는 이와 같은 원리를 따라 지어진 구조물이다. 하지만 건물은 미적이며 기능적이지는 못하지만, 튼튼하게 세워진 구조물 정도로 이해된다.

언뜻 보면 건축을 둘러싼 두 단어는 모두 같은 내용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잘 살펴보면 두 개념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건물은 기능을 수용하는 구조물이라는 구체적인 사물만을 말한다. 그러나 건축이라는 말은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예술과 과학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만큼 건축이라는 말에는 추상적이며 정신적인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예술과 과학의 원리를 따른 것은 ‘건축’이지만, 그렇지 않고 단지 물리적인 조건만을 갖춘 구조물은 ‘건물’이다. 흔히 건축을 건설 일반으로 알고 있는 것은, 우리가 서구로부터 건축을 받아들일 때 기술로만 받아들이고 이를 떠받치는 문화적인 측면을 소홀히 한데서 생긴 결과다. 그러나 실제 이 구별은 건축을 풍요롭게 이해하는데 그다지 좋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최근의 현대건축에서는 토목구조물처럼 보이는 대규모의 구조물로 건축을 바꿔 해석하거나, 조경의 풍경을 건축물로 바꿔 해석하기도 한다. 구조물의 특성을 오히려 강조해 이전에 미적이며 추상적인 특질을 고유한 것으로 여겨온 건축의 개념을 크게 확대해 가고 있다. 따라서 건축을 공부하려는 학생은 굳이 건축과 건물을 높은 개념, 낮은 개념으로 구별해 이해할 필요가 없으며, 그렇게 이해해서도 안된다. 대도시는 점차 확장해 가고 있고, 대규모의 건축물은 어디까지가 건축물이고 어디까지가 도시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도시의 모습을 건축물의 특성 안에 간직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오늘날 건축의 특성이기도 하다.

건축가는 현대 기술, 특히 미디어와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에 주목하고, 그것을 통해 건축의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한 예로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오가 최근 완성한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정보화시대에 적합한 도서관이자 정보관인 새로운 유형의 문화시설이다. 이 건물에서는 굳은 기둥이 사라지고 강철봉을 엮어 만든 속이 빈 그물과 같은 기둥을 통해 각종 설비와 환기, 열람자의 시선이 각층을 꿰뚫고 있다. 바닥은 평탄하고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곳에서 정보를 얻어내는 이 사회의 공간에 대한 체험을 건축으로 바꿔 놓았다. 물론 이 건물은 구조와 환경설비라는 측면에서도 첨단이지만, 공공건물을 대하는 시민의 감각을 미디어 시대의 감각으로 바꿔 놓는 혁신적인 도시건축의 전형이 됐다.

이와 같이 현대의 건축은 미적이며 추상적인 측면에서 논의하던 과거의 사고를 넘어 오히려 건물과 같은 넓고 편한 구조물 위에서 인간의 선택을 넓히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이 점에서 미적인 건축과 공학적인 건물이라는 이전의 구별은 더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문화와 역사를 기록하는 일
건축에는 공학 분야만이 아니라 그 이외의 분야에 속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인간은 스스로 만든 도구나 환경 속에서 생활한다. 내가 입고 있는 의복이나 의자, 그리고 텔레비전이나 자동차와 같은 일상적인 도구로부터 건축과 도시에 이르는 모든 것이 인간의 역사 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건축은 단지 미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 생활 전반에 관련된 모든 영역을 다루는 것이다. 이 때문에 건축은 공학 안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구미 각국과 동남아에서는 건축을 공대 안의 한 학과로 두지 않고, 매우 오래 전부터 ‘건축대학’으로 독립해 건축가를 배출해 왔다. 더욱이 이 모든 대학은 방대한 건축의 학문적 영역을 교육시키기 위해 의대와 마찬가지로 6년 간의 교육과정을 두는 것이 상례로 돼 있다. 졸업하면 국가가 공인하는 건축가의 자격을 획득한다.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교육을 받은 건축가는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다. 건축학이 의학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학문임을 모두가 인식하기 때문이다.

최근 공학에는 ‘첨단’이라는 학문 분야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건축은 역사가 증명하듯이 언제나 그 사회의 가장 발달된 여러 종류의 공학을 집대성해 왔다. 그리고 각 시대의 문화는 바로 건축을 통해 표현돼 왔다. 건축이라는 말 앞에 무슨 형용사가 필요하겠는가. 이렇게 건축은 고유의 영역을 지닌채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으므로 새삼스럽게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현대의 건축학은 과거의 전통적인 건축학으로부터 점차 크게 변하고 있다. 기술적인 측면만 하더라도 현대건축은 초고층, 지하건축, 대규모의 구조, 인텔리전트 빌딩과 같은 설비의 고도화, 재료와 부품 등 다양한 방면에서 급격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건축은 도시화와 고밀화, 지역개발과 같은 사회적 요구와 관련이 깊어졌다. 이에 따라 환경과 자연보호라는 지구 규모의 문제로까지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앞으로의 건축은 개발 형태, 사용 재료, 생활 형태 등 모든 방면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될 전망이다. 문화적인 측면으로는 기능만을 우선으로 하던 고도경제성장이 비판을 받게됨에 따라, 인류의 역사와 지역의 전통에 뿌리를 내린 건축과 도시의 모습을 추구해 가고 있다. 그 결과 현대의 건축학은 학문적으로는 건축 이외에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문화인류학, 의학, 지리학, 조경학 등 다양한 분야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가장 위대한 현대건축가인 루이스 칸은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건축역사 과목을 수강하고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처럼 구미에서는 고등학생에게 건축을 제대로 가르친다. 그것은 건축을 단순히 땅에 서있는 물체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담고 도시의 문화와 역사를 기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계가, 시공가에서 실내건축가까지
일반적으로 공학은 사물의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양적인 관계를 중시한다. 그러나 인간의 기능이나 목적에는 양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감성적인 부분이 있다. 앞의 경우는 공학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연구하는 구조, 설비, 플래너의 역할이며, 뒤의 경우는 공학과 예술이라는 서로 다른 두가지 측면을 종합하는 건축가의 역할이다. 따라서 건축학과는 다른 공학과는 달리 이런 서로 상반되는 직능을 한 학과에서 수용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건축이라는 용어가 ‘모든 기술의 장(長)’이듯이, 건축에는 다양한 분야가 서로 얽혀 있다. 건축을 하기 위한 작업으로서는 몇가지 단계가 있는데,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자신의 구상을 계획하는 일이 제일 먼저 시작된다. 이런 일을 하는 건축가는 설계라는 행위를 통해 건물의 쓰임새, 구조, 경제성, 문화와 도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종합하며, 건축물이 완성될 때까지 모든 책임을 맡는다. 그러므로 건축가에게는 논리적인 사고와 예술적인 감성이 아울러 요구된다. 흔히 건축학과가 공대 안에 있어서 예술적인 감성이라 하면 평균적인 수준 이상 정도로 이해하지만, 사실은 어느 예술 분야보다도 더 탁월한 재능을 요한다. 그러나 건축에 대한 태도는 다양하기 때문에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독특한 입장을 가진 건축가로 성장할 수 있다.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가가 자립해 일을 진행해 나가려면 많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이 분야를 지망하려면 대학을 마친 후 일정한 기간의 경력을 쌓고 국가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해 건축사의 자격을 얻어야 한다. 건축가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직업인이며,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도시 속에 건물을 지어 환경을 구축해 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건축가는 이런 직업 의식에 투철하고 ‘만들며 세우는’ 일에 끊임없이 매력을 느끼는 자가 아니면 안된다. 선진국에서 건축가를 사회의 지도자로 존경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건축은 대지 위에 서는 것이므로 정확하고 안전한 구조물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이에 대한 숙련된 이해는 위에서 말한 건축가도 겸비해야 할 분야지만 건축가가 완전히 처리할 수 없는 전문 분야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구조계획 또는 구조설계다. 이런 분야의 전문가들은 건축가가 구상한 형태와 공간을 구조에 대한 치밀한 계산과 직관에 의해 더 경제적이고 안전하며 다양한 형태가 가능한 구조물이 되도록 해결해 준다. 거대한 고층 건물이나 장대한 길이를 가진 공간은 바로 이런 건축구조설계가의 치밀한 계산과 해석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구조설계가 중에는 건축가를 돕는 입장을 넘어 건축구조라는 관점에서 역사에 남는 건축물을 남긴 인물이 많다.

또한 건축에는 마치 인체의 혈관처럼 이어진 각종 설비 기관이 내장돼 있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어떤 건물에 들어갔을 때 신선한 공기와 온도, 쾌적한 채광과 조명 등을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순환 체계는 건물 각 부분에 내장돼 있어서 금방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인체가 순환 체계를 잃으면 작동하지 않듯이 각종 설비기관이 결여되면 건축물은 생명을 잃게 된다. 최근에는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발달된 각종 전자 매체와 기기를 도입해 인공지능을 갖춘 건물을 설계하는 추세여서 이 분야는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가고 있다. 이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소리, 열, 공기, 전기, 기계에 대한 고도의 물리적인 지식을 요한다.

이렇게 해서 계획된 건축을 최종적으로 현실화하는 분야가 건축생산과 시공이다. 이 분야는 건축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흔히 봤기 때문에 비교적 익숙하지만, 사실은 나날이 발전하는 재료와 구법(構法), 내구성과 경제성을 고려한 공법의 개발을 위해 앞으로 더욱 본격적으로 다뤄야할 분야다. 이 분야가 점차 중요해지는 것은 최근 10여년간 건축생산과 시공 분야의 학자와 전문가가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

이외에 건축행정가라는 또다른 중요한 전문가가 있다. 건축이란 미술처럼 개인이 제작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건축물은 사회적인 산물이며 도시 환경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제도와 행정적인 조건이 매우 중요시된다. 건축행정가는 직접 건축물을 만들지는 않으나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보다 나은 건축과 도시를 만들기 위해 제도적인 측면에서 노력한다. 이들은 대개 국가와 지방단체의 고급공무원으로서 활약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건축이 성립하는 기술적이며 법제적인 조건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국가의 경제가 발전하고 도시환경의 중요성이 크게 인식됨에 따라 건축행정가의 임무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건축설계 중에서 독특한 분야로는 실내설계 또는 실내건축이 있다. 실내설계는 보다 정교하고 건축공간의 내부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감각을 중요시한다. 물론 이 분야는 넓은 의미에서는 건축가의 영역이지만, 프로젝트에 따라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독립해 활동하기도 하고 건축가와 협동해 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 분야를 위해서는 내부공간에 대한 예민한 감각과 건축재료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있었던 엑스포 전시관의 첨단시설을 수용한 내부공간들을 연상하면 앞으로의 실내건축 활동 영역이 얼마나 폭넓고 가능성이 큰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외에도 건축에는 여러 분야가 있다. 어느 분야에 종사하던지 이 땅 위에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활동하는 공간을 자기 손으로 직접 짓는 기쁨을 끊임없이 느끼는 사람이라야 한다. 그러나 건축을 통해 얻는 가장 큰 기쁨은 무엇보다도 다양한 영역을 통합해 대지 위에 건물을 세우는 것이며, 또한 학문과 분리되지 않고 그 속에서 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는데 있다.

[ 집중해부 ]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
서울대 공대 건축학과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출범에 따라 전문 직능 자격의 국가 간 상호인증 제도에 대비해 국제 건축학 교육기준에 맞춰 교육제도를 개혁했다.

이를 위해 2002년부터 건축학과는 건축학 전공과 건축공학 전공으로 나눴다. 건축학 전공은 5년제인데, 이는 건축설계를 중심으로 교육해 국제적 건축가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건축공학 전공은 4년제이며, 건축구조, 건축환경, 건축시공 등 건축공학과 기술을 연마해 국제적 건축기술사를 양성하는 과정이다.

5년제 건축학 전공은 32명을 따로 선발하는데, 1학년부터 5학점 10시간에 해당하는 건축설계스튜디오 과목을 매학기 들어 5년간 10개의 설계스튜디오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이 교육 과정은 세계건축사연맹(UIA)이 요구하는 기준에 가장 적합하다.

4년제 건축공학 전공은 공학계열로 입학해 2학년 진입할 때 건축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함으로써 결정된다. 건축공학 전공 인원은 현재 광역모집 제도에서는 25명 내외로 다소 유동적이다. 이 두 전공은 입학 때부터 구별하고 있으므로 건축학과라는 이름 아래에 있지만, 이 제도를 통해 입학한 학생의 정식 명칭은 각각 건축학과 건축학 전공 학생, 건축학과 건축공학 전공 학생으로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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