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이끌 정책 지도자 양성한다 - 기술정책
| 글 | 황준석·서울대 기술정책대학원과정 교수ㆍjunhwang@snu.ac.kr |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사회와 경제도 기술을 중심으로 융합하고 있다. 기술정책은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국가 기술의 흐름을 기획하고 평가하거나 회사의 운영 방안을 제시하는 분야다. 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하기 위해선 공학뿐 아니라 자연과학, 경제학, 경영학, 법학 등 다양한 전공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
|
|
|
서울대 기술정책: 대학원과정의 워크샵 모습. ‘21세기 테크노 헤게모니와 우리의 과제’란 주제로 서울대 이정동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
우리는 현재 세계화된 경제, 기술기반 사회, 그리고 컨버전스(융합)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생활이 가능하게 된 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부터 세계 7위의 경쟁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될 정도로 급속히 발전한 정보통신(IT)산업이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실제로 2004년 6월 한국은행의 통계 자료를 보더라도 IT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9.9%에서 12.4%로 높아졌으며,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같은 기간 33.5%에서 38.4%로 증가했다.
이처럼 IT 기반의 고도화된 사회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며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떤 것이 있을까? 일단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현대 사회는 정보화 시대(Information Age)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현재를 다시 정의한다면 ‘디지털 컨버전스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해온 혁신의 과정과 미래 사회의 특성을 알아보고 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열린 기술정책인의 조건과 역할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디지털 컨버전스의 시대
컨버전스란 각기 따로 존재하던 제품이나 산업이 기존의 특성을 모두 지니는 새로운 제품과 산업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IT 산업으로 한정해 생각하면 아날로그 제품들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호환성을 갖는 ‘디지털 컨버전스’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
|
미국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의 최고경영자(CEO)인 로버트 루츠. 그는 취임사에서‘우뇌 중심 경영’을 선언했다. |
정보통신부는 국내 IT 역량을 강화해 선진국으로서의 위치를 지키고 미래 기술을 주도하기 위해 ‘IT839’ 정책을 마련했다. IT839는 ‘8대 신규 서비스’‘3대 첨단 인프라’‘9대 신성장동력’을 포함하는 거대한 IT사회구축프로젝트다. 이처럼 미래의 우리나라는 첨단 공학 기술을 기반으로 한 기술 중심의 국가를 추구할 것이며 이를 위해 미래를 예측하고 새로운 기술 사회를 이끌 IT 지도자의 양성이 절실하다.
미래 경영학자 다니엘 핑크는 인류의 발전을 4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농업사회와 산업사회, 기술과 정보 중심의 정보화 사회, 그리고 창조자(Creator)와 감정이입자(Empathizer) 중심의 개념화 시대(Conceptual Age)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 생각은 경제학의 한 분야인 경제 성장과 관련된 ‘혁신이론’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혁신이론이란 사회의 발전을 혁신에 의한 발전으로 보는 경제학의 한 분야로 각 주체들이 어떤 관계를 통해 혁신에 성공하는지를 모델링하고, 그 원인을 찾아보는 분야를 말한다.
초기 농경사회의 경우 경제학은 생산함수를 자본과 노동이라는 투입요소로 설명한다. 농업 시대는 기술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자본을 통한 토지의 매입과 노동력 투입을 통한 생산량 증대가 수확물의 양을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었다. 이 같은 생산 함수 모델은 고전 경제 성장론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이루며 경제학적 토대가 된다.
그러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이런 함수의 개선을 요구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기술 개발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기술은 적은 노동으로도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는 산업을 성장시켰으며 대량생산을 통한 대량 수요 창출을 가능케 함으로써 기술과 수요라는 요소를 혁신의 중심에 올려놨다. 산업사회 이후 이제 우리 사회는 정보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정보화 사회는 무한한 정보의 축적을 통해 다양한 기술이 서로 융합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으며 이렇게 축적된 역량이 오늘날 컨버전스 사회를 이끌고 있다.
여기에 제도가 혁신의 주요인으로 새로 추가됐다. 이는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신기술과 기술 간의 조합이 발전하는데 국가 제도나 기업의 기술개발, 상용화 시스템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예로 우리나라는 유럽의 GSM 방식과 달리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이라는 방식을 이동통신 표준으로 선택했는데, 이는 국내 CDMA 관련 기술의 급속한 성장을 촉진했다. 이처럼 사회 제도나 국가 제도, 기업 시스템은 특정 기술을 선택,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정보화 사회를 발전시키고 있다.
미래는 사용자 중심의 개념화 시대
|
|
디지털 컨버전스는 서로 다른 기능의 제품이 융합해 새로운 제품을 재탄생 시키는 과정이다. 사진은 게임과 동영상 플레이어를 결합한 PSP |
그럼 앞으로의 미래사회는 어떤 사회로 전개될까? 다양한 혁신 이론 중에서도 사용자 중심의 혁신이라는 관점이 눈길을 끈다. 앞서 언급한대로 현재는 공학 기술 위주의 고도 정보화 사회다. 정보통신부의 기술혁신전략 등에 힘입어 머지않아 네트워크 사회 구축을 위한 인프라가 구축되고 접근성도 크게 개선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그런 인프라를 통해 개개인이 주고받으려는 콘텐츠의 개발과 유통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콘텐츠는 사용자가 직접 선택하며 원치 않는 콘텐츠는 시장 경제의 원리에 따라 시장에서 배제된다. 따라서 얼마나 사용자의 요구를 잘 반영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며 미래엔 이런 사용자의 역할이 좀 더 확대돼 실제 기술 개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용자 중심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요구되는 것이 바로 창의성을 갖는 ‘우뇌 중심적 사고’다. 창조적 사고는 ‘하이터치’(high touch)와 ‘하이컨셉’(high concept)을 통해 완성된다. 정보화 사회의 기본은 집약된 기술력으로 나타나는 하이테크(high-tech)다. 과거엔 하이테크라는 매력 자체가 소비자들을 끌어당겨 수요를 창출했지만, 미래에는 하이테크 제품을 만든 회사의 브랜드 가치, 디자인, 사용자의 공감대, 감성적 만족도가 제품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 공유 가능한, 즉 사용자들 간에 확산 가능한 공통된 목적과 의미를 발견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하이터치다.
하이터치는 다시 6가지의 감각으로 나뉘는데 디자인(design), 스토리(story), 조화(symphony), 감정이입(empathy), 놀이(play), 의미(meaning)가 그것이다. 이 6가지 감각이 정보화 사회에서 축적된 하이테크와 만나 의미 있는 지식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하이컨셉은 다양하고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지식 속에서 관계를 발견해 감성적, 예술적으로 조합해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런 관계에 따라 혁신이 이뤄지며 이미 우리는 다양한 컨버전스 제품에서 이 징후를 볼 수 있다. 요즘 많이 판매되는 휴대전화 단말기나, MP3플레이어를 보더라도 기존의 다기능 위주에서 벗어나 수려한 디자인과 브랜드의 이미지화 작업, 사용자 편의성을 최대한 반영하는 인터페이스, 그리고 사용자가 직접 참여하는 펌웨어 업그레이드 등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보는 방송 콘텐츠도 시청자가 이야기의 흐름을 직접 바꿀 수 있는 있으며, 사용자 스스로 정보망을 구축해 지식을 제공하는 포털사이트의 등장도 미래에 펼쳐질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가 된다. 해외로 눈을 돌려 보면 가까운 일본은 과거 대표적인 좌뇌 중심적 성장을 해온 나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교육제도는 개성 없이 동일한 지식을 암기하고 창의성보다 기존 사고방식을 답습하는 입시형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교육시스템의 새로운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의 가장 수익성 높은 수출품은 자동차나 전자제품이 아니라 영화, 애니메이션과 같은 대중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교육부는 학생들이 자기 삶의 의미와 목적에 중심을 두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으로부터의 교육’이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이라는 거대 다국적 회사를 예로 들 수 있다. GM은 기존 이미지에 따르면 정보화 사회보다도 이전, 즉 산업사회의 대표 기업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최고경영자 로버트 루츠는 미래 기업으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는 GM의 경영을 맡을 당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기업 문화 개선 방향을 밝혔다.
“나는 좀 더 우뇌에 의존하는 경영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나는 GM이 예술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예술, 오락, 그리고 자동차는 모두 우연하게도 일종의 전달 또는 수송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요.”이처럼 하이터치와 하이컨셉의 경향은 이미 우리 삶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앞서 살펴본대로 미래 개념화 사회를 이끌 인재상에는 학제간 연구를 통해 IT 지도자를 지향하는 열린 기술정책인도 포함된다. 그보다 앞서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자본과 노동에서 기술과 수요로, 제도와 다양성, 수요자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큰 중심축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하지 결코 그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열린 기술정책엔 학제간 연구 필요
미래에도 자본과 노동, 기술은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컨버전스 시대 이후는 그 기반을 하이테크에 두고 있는 만큼 기술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기술 중심의 수출 정책을 펴고 있는 국가에서는 절대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기술정책이란 기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국가 관점에서 기술의 흐름을 기획하고 평가하는 것, 기업의 관점에서는 회사의 운영 방안을 제시하고 경제학적 분석을 이용한 전략 평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기술정책 분야는 공학, 자연과학, 경제학, 경영학, 법학 등 다양한 전공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이를 바탕으로 IT를 포함한 기술 분야의 세계적 흐름을 찾고 경제학적 분석을 근거로 합리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분야다.
과거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모델로 따라하는 방식을 통해 성장해 왔다면, 이제는 IT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의 기술 흐름을 주도하는 위치에 서게 됨에 따라 비전을 제시하고 지난 과정을 평가하는 기술정책의 중요성이 매우 커지고 있다.
기술정책은 수요 예측이나 기술 이전, 사업화 정책, 기술 가치 평가, 공공 정책과 같은 다양한 국가 정책 수립 과정에 대한 평가와 함께 IT 기업의 전략 연구에도 활용되고 있으며 정책 제안도 포함한다. 공학과 경제학의 협동과정인 만큼 각종 공학 저널이나 경제학 저널에 활발히 논문을 발표하거나 해당 기관으로 진출해 미래 지도자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게 된다.
미래 사회를 이끌 지도자로서 열린 기술정책인의 조건이자 자세로는 5가지가 있다.
먼저 개방된 정책은 공공을 위한 비전을 필요로 한다. 이는 사람과 사회 중심의 사고를 요구하며 소비자 잉여(consumer surplus)와 사회 후생에 대한 관심을 의미한다. 기술의 발전은 단기적 영향뿐만 아니라 사회의 중장기적 성장과 분배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공공을 위한 비전을 항상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세계에 대한 열린 자세가 요구된다. 축적된 정보와 네트워크는 오늘날 지리적 한계나 정치적 경계를 훌쩍 뛰어남는다. 특히 이같은 상호 피드백을 통한 역동적인 진화는 보다 풍부한 지식 축적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따라서 정보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은 미래 지도자를 위한 필수 조건이다.
세 번째로 넓은 안목을 갖춰야 한다. 우리는 흔히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이를 탓하지만, 숲만 보았지 나무를 모르는 것은 자칫 하나도 내세울 게 없는 전문 지식의 부재를 낳을 수 있다. 즉 이는 미시적·거시적 관점 모두 열려있는 시각을 의미한다. 비전을 제시하고 방향을 이끄는 지도자라 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이고 실증적 정책 분석·판단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체성이 곧 공학적 지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을 통한 미래를 이끄는데 실제 공학 기술의 전문성이 없다면 나무도 모르면서 숲을 논하는 것과 같다.
네 번째로 시간 감각이 요구된다. 기술의 발전에서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어떤 것도 논할 수 없게 된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기술을 특정 타이밍으로 제한하게 된다. 5년, 10년, 15년 이상의 기술 발전을 예측하고 사용자 중심의 감성을 적용하기 위해 시간 감각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의 지도자에겐 첨단 기술을 예측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미래지향적 사고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열려있는 학문적 자세가 필요하다. 다양한 분야를 두루 아는 것은 가능하지만 다양한 분야를 깊게 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바로 학습을 위한 열린 자세다.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갖고 배울 수 있는 자세, 비전문인에게 자신의 전문 분야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자세가 바로 의미 없어 보이는 지식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는 열쇠이자 다양한 소비 패턴의 공통분모를 찾아낼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참된 비전은 항상 대가를 요구한다. 안목을 넓히기 위해서는 참된 비전이 필요하며 근시안적인 값싼 비전은 진정한 비전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은 우리의 감성과 지식을 이루는 소중한 단편들이며, 정보화 사회에서 접하게 되는 많은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참된 비전을 갖는데 충분한 대가가 될 것이다. 다니엘 핑크의 ‘A Whole New Mind’나 서울대 김도연 교수의 ‘우리시대 기술혁명’ 같은 책들은 사고의 폭을 넓히고 미래 지향적인 사고를 갖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황준석 교수는
1989년 연세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미국 콜로라도대 공대에서 텔레커뮤니케이션을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2000년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정보과학 텔레커뮤니케이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까지 효성컴퓨터 연구개발 엔지니어, 1999년 피츠버그대 강사와 2000년 미국 시라큐스대 교수로 일했다. 2003년부터 서울공대 기술정책 대학원과정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