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수도공학 - 21세기 보건 위생의 첨병 | ||||||||||||||||||||||||||||||||||||||
---|---|---|---|---|---|---|---|---|---|---|---|---|---|---|---|---|---|---|---|---|---|---|---|---|---|---|---|---|---|---|---|---|---|---|---|---|---|---|
|
||||||||||||||||||||||||||||||||||||||
| 글 | 한무영/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ㆍmyhan@snu.ac.kr |
얼마 전 미국공학한림원에서는 지금까지 인류가 쌓은 최고의 업적 20가지를 선정한 일이 있다. 전기, 항공기, 자동차 등 뛰어난 발명 가운데서도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상하수도였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대폭 연장했다는 것이 선정 이유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불결한 환경에서 전파되는 콜레라나 이질 같은 수인성 전염병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은 30~40세에 불과했다. 하지만 상하수도가 설치되고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80세 이상 사는 것은 보통이 됐다. 의학과 약학은 아픈 사람을 고쳐주지만 상하수도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평균수명을 높이는데 직접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에 파급효과는 더 크다. 인류 최고의 발명, 상하수도
상하수도의 기본 개념은 안전한 식수를 확보하는데서 시작됐다. 또한 물을 사용하고 나면 자연히 생활하수도 발생한다. 상수도와 하수도는 함께 굴러가는 수레바퀴처럼 발전했다. 고대 유적에서 상하수도 흔적이 항상 함께 발견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물 관리는 시급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시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더러운 오물을 서둘러 없애주는 것은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였다. 예나 지금이나 대다수 도시가 강을 끼고 발생한 이유도 깨끗한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원활한 하수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빗물을 배출하고 관리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치수에 실패하면 홍수로 모든 것을 잃든지 가물어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물 관리의 책임은 언제나 최고 권력자에게로 돌아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부터 비가 안 오거나 너무 많이 올 때면 기우제나 기청제를 지내곤 했는데, 국가나 지방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이 의식을 담당한 것을 보면 그 중요성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상하수도는 인류와 함께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필요한 학문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상하수도가 현재와 같은 모습을 띠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도 안된 일이다. 그 전에는 런던의 템즈강이나 파리의 센강도 오물투성이였다. 불결한 환경 탓에 수인성 전염병이 돌면서 많은 도시인들이 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유럽의 화려한 궁전에도 건물 안에 화장실이 없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아침마다 2층에서 오물을 길거리에 버리는 것이 당연시 돼 골목골목은 오물로 넘쳐났다. 더러운 오물을 피해 다니느라 굽이 높은 하이힐이 발명되고 악취를 막기 위해 다양한 향수가 개발됐다. 이같은 기록만 봐도 인류가 형편없는 위생상태를 벗어난 것이 고작 100년 안팎의 일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관료들 사이에서는 오물을 버리는 다양한 방법이 토론됐다. 처음에는 오물을 한데 모아 수거하자는 의견과 물과 함께 흘려보내자는 두가지의견으로 나뉘었다. 오랜 논란 끝에 물로 흘려보내자는 쪽으로 기울어지자 도시는 곧 하수관 설치 공사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의 하수관이 도로 아래에 묻히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실시된 이런 하수 배출 방법은 미국과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까지 넘어왔다. 새로운 하수체계는 의학이 넘지 못한 한계를 뛰어넘었다. 의술로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수명을 30~40년까지 늘리는 효과를 달성한 것이다. 그러나 한계도 많았다. 하수관을 묻고 유지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고 낙후된 시설을 수리하는데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용을 감당하기 힘든 가난한 나라는 이같은 방식의 물관리 시스템을 무작정 도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구 증가에 따른 하수발생량 증가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근대 상하수도 체계가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 지구 인구가 5배 정도 늘었으며 그만큼 하수발생량도 증가했다. 이에 따라 기존 상하수체계가 결코 지속가능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유럽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실제로 현재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음’은 자연생태계 순환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연정화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하수가 환경을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태계는 더 이상 오염물질과 질소, 인 같은 유기물질을 해독하지 못한 채 축적하고 있다. 유기물질이 쌓이면 산소요구량도 따라서 올라가 유해한 혐기성 상태로 바뀌게 된다. 특히 하천은 이같은 ‘역습’에 가장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질소와 인은 하천에 ‘부영양화’를 일으킨다. 하수에 섞여 있는 이들 물질은 대부분 사람들이 버린 배설물에서 나온다. 음식에 들어가는 채소를 키우기 위해 사용한 비료가 주원인이다. 비료는 대부분 공기 성분 중 하나인 질소와 인산 광석을 화학반응시켜 얻는다. 결국 질소의 경우 대기에서 하천으로, 인은 인산 광산에서 하천으로 흐르는 셈이다. 흐름이 계속될수록 자원도 고갈되고 하천도 심각하게 오염되는 상황이 초래된다. 실제로 인산 광석의 매장량은 매년 줄어들고 있으며 질소와 인이 오염시킨 하천을 복원하기 위해 점점 더 높은 수준의 처리기술이 요구되고 있다. 인류 모두 혜택 누려야
문제는 대상국 대다수가 저개발국이기 때문에 근대적 개념의 상하수도 체계를 그대로 도입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지금의 체계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 효율이 높고 안전성도 확보된 첨단 관리 방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기술은 선진국들도 가까운 미래에 도입해야 할 기술이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물 관리 방법에서 새로운 계기가 마련돼야할 시점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상하수도’란 어떤 것일까. 쉽게 설명하면 물질의 흐름을 순환시키는 구조다. 하수에서 발생한 영양염류를 하천에 버리지 않고 비료로 사용하면 화학비료 사용량도 줄이고 하천 오염도 막을 수 있다. 이처럼 자원 고갈과 하천 오염 문제는 물질을 순환시킴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기술이 서로 합쳐지고 있다. 정보기술과 생명공학, 나노기술은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물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우리가 가정에서 가장 많은 물을 사용하는 곳은 화장실로 전체 생활용수의 50~60%가 이곳에서 소비된다.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물만 줄인다면 가정으로 보내는 물 공급량도 줄일 수 있으며 처리해야할 하수도 따라서 줄어든다. 물 부족 문제나 하천수질오염 문제의 해결책은 그만큼 생활 가까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드라이 토일렛’(Dry Toilet)과 물 안쓰는 소변기다. 비행기 기내에 설치된 변기처럼 드라이 토일렛은 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물을 처리한다. 그리고 한곳에 모인 오물은 첨단 바이오기술을 이용한 생물학적 방식으로 처리되는데 이때 발생한 악취조차도 미생물로 분해된다. 특히 ‘연꽃효과’라는 표면처리기술은 연잎에 맺힌 물방울이 미끄러져 떨어지듯 오물을 물체 표면에서 제거하는 첨단 기법으로 나노기술을 응용한 것이다. 이같은 시설을 도시 전체에 설치하려면 첨단 관리 기술도 필요하다. 커다란 도시의 상하수도 시설을 실시간 관리하기 위해 최근 정보기술(IT)이 폭넓게 도입되기 시작했다. 물 관리에 IT를 이용하는 것은 서울시가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시는 다른 나라에서 보기 드문 다목적 수자원 관리 전략을 내세운다. 그 중 홍수방지와 물 절약을 위해 빗물 저류조를 설치하고 이를 원격 감시하는 방안이 눈길을 끈다. 사실 멀리 떨어져 있는 댐은 도시에서 홍수나 침수 피해가 발생했을 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다. 아무리 큰 댐도 수위를 낮춰둬야만 다음 홍수에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심 건물에 수많은 저류조를 만들어두고 원격 감시 기술로 관리하면 댐 기능을 부분적으로 대신할 수 있다. 저류조에 모인 물을 다시 화장실이나 조경 용수로 사용하면 물 절약에 친환경적인 욕구도 채울 수 있어 일석삼조의 효과까지 볼 수 있다. 또한 더운 여름에는 도로나 건물 지붕 위에 뿌려서 냉방비를 아끼기도 한다. 빗물 저류조야말로 최고의 물 관리 기술인 셈이다. 서울시의 이런 전략은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를 맞고 있는 여러 나라에서 따라 해볼 만한 방식이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세계기상기구(WMO)에서도 이 방안을 다른 나라에 적극 알려나가기 위해 준비 중이다. 옛 것 되살린 첨단 관리 기술
최근 유럽에서 이런 현상을 자주 볼 수 있다. 유럽에서는 길거리 옆에 입구를 두고 지하실을 식당이나 주거공간으로 사용하는 나라가 많다. 지금까지 역사상 한번도 홍수로 인해 침수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같은 문화가 발달한 것이다. 하지만 집중 호우가 내리면 이 지하시설은 대부분 침수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큰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실제 이런 상황은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유럽의 몇몇 도시들은 매년 침수 피해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빈도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제대로 된 빗물관리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오래된 상하수도 시설도 새로운 관리 기술의 출현을 재촉하고 있다. 서서히 노후화하는 상하수도 시설은 언제가 후손에게 큰 경제적 사회적 부담을 안길지도 모른다. 결국 새로운 빗물 관리 기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바로 이를 미리 방지해 편안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바로 현대 상하수도공학자의 몫이다. 사회 전체 구성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줄 필수적인 인력인 것이다. 처음 출현 당시 상하수도가 전염병을 예방하고 위생 상태를 개선해 건강한 도시를 꾸미는 것이 목표였다면 현대에 와서는 기후변화에 대비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를 위해 본보기로 삼을 만한 나라는 어디일까? 여기에는 5000년 금수강산을 지켜온 우리 선조의 지혜와 철학이 이용될 수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며 항상 겸손한 마음을 가진 조상들은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물을 관리해왔다. 기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최고 권력자인 왕이 직접 세계 최초로 측우기와 수표를 만들어 기록하고 관리했다는 사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또한 홍수와 가뭄이 드는 것을 막기 위해 지역 곳곳에 소규모 저수지와 댐을 쌓았다. 이는 대형 댐을 중심으로 하는 집중형관리 방식이 아닌 분산형으로 관리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지 말라는 옛 속담이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선조들은 수질 관리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개울에 오줌을 누면 감자 고추가 된다고 하는 속담이나, 개울에서 기저귀를 빨지 못하게 하는 것도 모두 물을 깨끗이 유지하려던 노력이 드러난 옛말이다. 최근 문제로 떠오른 인체에 의한 환경호르몬의 영향을 아마도 예상했던 것같다. 소변을 따로 통에 모아 비료로 사용하던 방식은 물질순환형 하수처리방법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선진국에서 하수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분뇨분리형 화장실은 우리 전통의 ‘오줌장군’을 현대식으로 개선한 것이다. 여기에 국가 성장 동력으로 집중 육성되고 있는 첨단 정보기술과 바이오기술, 나노기술은 경쟁력을 더할 수 있다. 정보기술과 빗물 관리 기술을 결합한 서울시의 사례는 첨단 기술을 상하수도에 접목시키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조상의 지혜에 첨단 기술을 접목시키면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발생할 물 문제는 우리 젊은이들이 주도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무영 교수는 1977년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환경공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토목공학과 부교수를 거쳐 1999년부터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때 현대건설에서 실제 설계를 담당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건설교통부 중앙설계심의 위원과 환경부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깨끗한 수도물을 만드는 첨단 기법과 빗물을 좀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