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최성현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 ( schoi@snu.ac.kr )
미국의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그의 책 ‘소유의 종말’에서 “인터넷 시대에는 재화의 중심축이 ‘물질’에서 ‘경험’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가까운 미래에는 웬만한 보석보다 휴대전화가 값비쌀 수 있을까. 리프킨의 말대로라면 보석을 갖는 것은 개인의 만족으로 끝나는 소비성 경험이지만 휴대전화를 사는 것은 상대와의 관계를 만드는 생산적인 경험 활동이므로 이 가설은 참일 확률이 높다. 이 덕에 통신서비스는 이제 생활의 필수품이 됐다.
한국은행은 2005년 ‘가계 지출 중 전화나 인터넷으로 쓴 통신비가 5.4%로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했으며 이는 식료품 지출비용이 3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는 것과 대비된다’는 연구보고서를 냈다. 실제로 2007년까지 성인 10명 가운데 9명이 휴대전화에 가입했다. 사람들이 점점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매개로 한 경험을 중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경험의 바탕에는 전화선이나 랜(LAN)선의 제약 없이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무선통신기술이 있다. 인터넷과 무선 이동통신은 우리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무선네트워크는 생활의 일부분
한국인터넷진흥원은 2007년 11월 무선인터넷 사용실태를 발표했다. 12~59세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최근 1년 동안 무선인터넷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 소비자는 47.7%였으며, 특히 20대는 80%가 넘었다. 오늘날 우리는 무선네트워크 기술을 사용해 언제 어디서나 휴대전화, 노트북 컴퓨터, 개인휴대용정보단말기(PDA)로 인터넷에 접속해 화상통화까지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쓰는 무선네트워크 기술과 서비스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무선랜(Wireless Local Area Network) 기술이다. KT의 ‘네스팟’ 서비스로 널리 알려졌다. 집이나 사무실에 무선공유기 하나만 구입해 설치해 놓으면 추가의 통신비용 없이 노트북이나 컴퓨터 등으로 최고 54Mbps 전송속도(고속)로 무선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전송거리가 수십 미터를 넘지 못할 정도로 짧고 무선랜 통신이 가능한 지역이 제한된다는 단점은 ‘넘어야 할 산’이다.
둘째, 와이브로(WiBro, Wireless Broadband Internet) 기술이다. 고정된 자리에서만 서비스된다는 무선랜의 단점을 해결한 것으로, WiBro를 이용해 자가용이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서도 초고속 인터넷을 할 수 있다. WiBro는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국제표준을 개발할 때 국내 기술자들이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무선랜보다 전송속도가 느린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셋째,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Wideband 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기술이다. ‘쑈~를 해라’라는 광고 문구로 유명해진 KTF의 SHOW서비스가 WCDMA를 기반으로 한다. WiBro보다 전송속도는 느리지만 전국 어디서나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주로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 사용된다.
다중접속기능의 성과
기존의 유선통신에서 무선네트워크로 진화하면서 여러 사람이 데이터를 한번에 전송할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유선통신 네트워크는 랜선의 양쪽 끝에 사용자가 한 명씩 연결돼 신호를 주고받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무선통신 네트워크는 여러 사람이 지정된 무선 통신지역에서 정보를 주고받아야 했다.
이 문제점을 ‘다중접속기술’(multiple access)이 풀었다. 다중접속기술은 제한된 무선주파수대역에서 여러 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WCDMA에 사용된 CDMA 기술, WiBro에 채택되고 차세대 무선네트워크의 기반이 될 직교분할주파수다중접속(OFDMA, Orthogonal Frequency Division Multiple Access) 기술이 대표적인 예다.
무선네트워크 기술은 음성·화상통신 데이터를 무선으로 전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속도도 비교적 빠른 편이다. 최근 SKT의 ‘3G+’ 광고에서 보듯 휴대전화로 화상전화를 하는 것이 좋은 예다. 사실 화상통신은 유선인터넷에서도 쉽지 않았다. 속도가 느려 상대방이 말하는 도중에 영상이 끊기거나 늦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유선에서도 잘 안 되던 일을 무선에서 해내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데이터를 네트워크에서 제공하는 기술이 QoS(Quality of Service)다. QoS는 이동하면서도 무선네트워크를 통해 고품질의 음성·영상 데이터를 얻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발전할 분야다.
한편, 무선네트워크가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 유선네트워크보다는 전송 속도가 느리다. 국제표준 단체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R)은 2010년 이후에 등장할 미래의 이동통신인 4세대 이동통신이 정지했을 때 1기가비트(Gbps), 이동할 때 100메가비트(Mbps)의 전송속도를 지원해야한다는 규정을 뒀다. ITU-R의 규정을 만족하려면 안테나를 동시에 여러 개 사용하는 다중안테나 기술이 해답이 될 수 있다.
공학자들은 무선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언제 어디서든 원할 때 통신할 수 있는 3, 4세대 통신에 이어 5세대 이동통신이 머지않아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5세대 이동통신은 전파를 이용하는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TV 방송용 주파수가 주어진 시간에 사용하지 않는 대역을 자동으로 찾아 무선통신용으로 사용하는 ‘인지 라디오’(cognitive radio)가 좋은 예다.
'무한’발전 ‘무선’네트워크
이렇듯 발전을 거듭하는 무선네트워크 분야는 삼성이나 LG 같은 통신장비 제조사와 장비를 기반으로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KT/KTF, SKT, LGT 등의 서비스 업체가 주축이 된다. 해외에서는 미국의 인텔이나 퀄컴 같이 통신용 칩을 만드는 반도체 업체의 역할도 아주 중요하다.
이들 기업과 세계 연구소들은 현재 무선통신의 국제표준을 정하기 위해 분주하다. 통신은 전세계를 무대로 하므로 전세계가 표준화된 한 개의 통신모듈에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공학자에게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자신이 개발한 무선네트워크 기술이 현장에 쓰이면 자신의 기술로 표준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서 개발한 WiBro가 국제표준을 획득한 것도 이 맥락이다. 특히 한국은 무선네트워크 기술을 선도해가는 입장으로서 향후에도 차세대 이동 네트워크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따라서 국제적으로 경쟁할 마음가짐이 돼 있는 도전정신이 강하고 창의력 풍부한 인재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무한 가능성의 공간이 바로 무선네트워크 분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