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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전자공학 - 나노시대 미다스의 손
분야 융합과학/나노
산업기술/전기
날짜 2011-05-09

나노전자공학 - 나노시대 미다스의 손

글 : 박영준 서울대 전자공학부 교수 ( ypark@snu.ac.kr )


1948년 반도체인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뒤 수많은 트랜지스터가 반도체 웨이퍼에 집약돼 기억장치인 D램, 컴퓨터칩이 탄생했다. 전자공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소리와 모양을 디지털로 바꿔 많은 정보량을 압축하고, 이 정보를 빠른 속도로 다른 곳으로 보내는 기술을 실현해 생활양식의 변화를 가져왔다. 10년 전만 해도 무선인터넷으로 음악을 내려받거나 사진을 찍어 다른 사람에게 전송하는 휴대전화가 나타날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이렇듯 전자공학은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렇게 빠른 속도로 기술의 진전을 이룩한 학문 분야는 없었다.

기술이 빨리 발전할수록 ‘게으른’ 전자공학자들은 많은 양의 데이터, 빠른 신호, 트랜지스터의 작은 크기를 표현하기 위해 10에 0을 잔뜩 쓰는 대신 기가(giga)나 나노(nano) 같은 말을 사용했다. 기가는 10을 9번 곱한 양이고, 나노는 10분의 1을 9번 곱한 양이다. 반도체의 크기는 몇 년 사이에 밀리미터(mm)에서 마이크로미터(μm, 1μm=10-6m), 나노미터(nm, 1nm=10-9m)로 변했고, 반도체가 처리하는 신호는 헤르츠(Hz)에서 MHz(메가헤르츠, 1MHz=106Hz), GHz(기가헤르츠, 1GHz=109Hz)로 변했다. 이제 처리속도는 ‘기가’를 넘어서고 있으며 크기는 ‘나노’에 다가가고 있다. 지난 50년간 전자공학이 이룩한 기술의 범위는 기가에서 나노 사이이므로 0이 18개 붙은 범위를 다루게 됐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전자공학의 특징은 ‘더 빨리, 더 많이, 더 작게’로 표현할 수도 있다. 지금 공학자들은 0의 범위를 더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넓은 범위를 다루는 과학기술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연구한다.

빛과 생물 신호까지 처리
반도체칩을 이용해 컴퓨터를 만들고, 메모리칩을 만들어 자료를 저장하는 기술은 결국 전기신호를 처리하는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전자공학자는 전기신호를 처리하는 기술을 넘어 다양한 신호를 전자공학적으로 처리하고 싶어한다. 대표적인 예가 디지털사진기다. 예전에는 카메라에 필름을 사용했다. 필름에는 감광제라는 화학약품이 칠해져 있다. 감광제는 빛을 받으면 변하는데, 이 부분을 다시 인화지로 재생하면 사진이 된다. 카메라가 발명되고 나서 필름은 100년 이상 지속됐다. 5년 전만 해도 거리에는 인화를 해주는 사진관이 즐비했다. 그러나 이런 사진관은 지난 5년 사이 거의 없어졌다. 바로 반도체칩 때문이다.

이 칩을 CIS(CMOS Image Sensor)라고 한다. 즉 영상을 감지하는 CMOS라는 트랜지스터다. 빛을 CIS에서 전기신호로 바꾸는 원리는 간단하다. 빛은 에너지이기 때문에 반도체는 빛을 받으면 자유전자와 정공(구멍)이 생긴다. 에너지를 받은 전자가 반도체 원자핵에서 튀어나가 빈 구멍을 만들기 때문이다. CIS는 원자핵에서 튀어나간 자유전자의 수를 센다. 빛이 강하면 자유전자의 수가 많고, 약하면 수가 적다. 전자공학자는 필름을 사용할 필요 없이 전자의 수를 세기만 하면 된다.

화학약품인 감광제에 비해 반도체는 깨끗하고 싸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사람은 비용 걱정 없이 수없이 카메라의 촬영 버튼을 눌러도 된다. 예전에는 렌즈를 잘 만드는 회사가 카메라를 만들었지만 요즘은 반도체를 잘 만드는 삼성이나 소니 같은 회사가 카메라를 만든다. 전자공학자는 빛 신호에서 생물 신호로 전자를 다루는 범위를 넓힌다.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일도 반도체 트랜지스터로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생명체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작용에는 전자나 전하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생명현상은 두 활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에너지를 얻어 몸을 움직이는 활동과 외부의 일을 알아내고 그 신호를 뇌로 전달해 정보를 처리하며 저장하는 활동이다. 세포가 미토콘드리아에서 에너지를 만들 때는 수소이온이 관여하는데, 수소이온은 전하라 볼 수 있다. 감각신호를 뇌로 전달할 때도 전하량 변화를 이용한다.


반도체칩, 달팽이관에 들어가다
전자공학자가 생물 신호를 다룰 수 있게 된 계기는 트랜지스터의 크기가 수십nm로 줄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세포보다 크기가 작기 때문에 트랜지스터를 이용해 세포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일과 신경세포의 신호전달 방법을 재현할 수 있다. 세포막에서 전하량이 작게 변해도 전기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면 트랜지스터에 흐르는 전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 기술이 응용된 예로는 청력을 회복시켜주는 반도체칩을 들 수 있다. 사람은 달팽이관에 이상이 있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고막에서 전달된 진동이 달팽이관에서 청각세포에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부 김성준 교수팀이 연구하고 있는 반도체칩은 달팽이관에 들어가 직접 청각세포에 신호를 준다. 외부의 마이크에서 소리를 전기신호로 바꿔 무선으로 귀 안의 반도체칩에 전달하면 반도체칩의 전기신호가 청각세포를 자극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반도체칩의 소형화 기술, 음성처리 기술, 무선통신 기술이 기반이 됐다. 이는 작은 예에 불과하다. 전자공학자는 지난 30년간 뇌 과학에 도움을 줬다. MRI(자기공명영상장치) 신호를 정확하게 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이미징 기술은 물론이고 μm 크기의 바늘과 회로 제작기술을 통해 뇌를 비교적 정확하게 탐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든 학문과 융합하는 전자공학
전자공학은 이제 인간의 안전과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다. 나노전자공학자들은 수십 nm 크기의 반도체칩을 뇌를 포함한 각 부위에 꽂으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지만 쉽게 치료할 수 없는 뇌질환, 심장질환, 암을 미리 탐지하기 위해서다. 반도체칩은 각 부위에서 받은 신호를 무선으로 의사에게 전해줘 질병의 조기발견을 돕는다.

전자공학은 다른 학문 분야를 쉽게 받아들여 발전하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양자역학을 받아들여 트랜지스터를 발명하고 반도체칩 기술을 발전시켰다. 수많은 수학 기법을 받아들여 부호이론, 신호처리 기술을 진전시키기도 했다. 자동제어 이론은 로봇, 건축, 자동차의 안전을 보장하는 기술로 발전했다.

최근 전자공학은 그 영역을 의학과 생명공학, 인공지능으로 확대하고 있다. 앞으로는 에너지를 깨끗이 사용하는 기술도 개발돼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나노전자공학은 젊은 학생들의 상상력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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